적어도 내게는 민중의 적, 그 이후의 재판(A Trial – after An Enemy of the People)가 올해 유럽 여름 페스티벌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작이 된 이유가 분명하다.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압도적인 이유가 있다. 바그너 모우라(Wagner Moura)의 무대 복귀다.
넷플릭스 〈나르코스〉에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섬뜩할 만큼 매혹적으로 연기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모우라는 최근 영화계에서도 눈부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Kleber Mendonça Filho)의 걸작 <비밀요원(The Secret Agent (O Agente Secreto))>에서 지난해 최고의 스크린 연기 중 하나를 선보이며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골든글로브를 거쳐 아카데미 역사상 브라질 배우로는 손에 꼽히는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 대담한 각색의 씨앗은 2022년 말 로스앤젤레스에서 뿌려졌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저명한 브라질 연극 연출가 크리스치아니 자타이(Christiane Jatahy)는 식민지 폭력을 다룬 3부작의 마지막 장, <침묵 이후(Depois do silêncio (After the Silence))>를 무대에 올리고 있었다. 모우라는 그 공연의 관객이었다. 막이 내리자 모우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품고 무대 뒤로 찾아갔다.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 복귀는 자타이의 작품이어야만 했다.
브라질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권의 극우 권위주의를 함께 겪으며 문제의식을 공유했던 두 사람은, 헨리크 입센의 1882년 고전에서 오늘날을 비추는 완벽한 거울을 발견했다. 단순한 재연이 아닌, 작품을 과감하게 다시 쓰고, 원작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한 인터랙티브 속편을 만들어냈다.
입센의 원작은 의사 토마스 스토크만이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이후를 이어간다. 배경 역시 부패한 현대 브라질의 작은 온천 마을로 옮겨졌다. 자타이와 모우라는 입센이 던졌던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무장시키며 기후위기,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 가짜뉴스, 캔슬 컬처*까지 우리 시대의 첨예한 현실을 정면으로 겨눈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 :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이나 행동을 한 개인, 기업, 단체에 대해 대중이 지지나 소비를 중단하고, 공개적으로 책임을 묻는 사회적 현상
이 작품은 관객 참여형 법정극이라는 독창적인 형식을 취한다. 매 공연 무작위로 선정된 관객들이 배심원이 되어 스만이 정말 '민중의 적'인지 직접 판결을 내린다.
자타이 특유의 멀티미디어 연출은 여기서 더욱 빛난다. 라이브 연기와 사전 촬영된 영상, 그리고 공연 중 실시간 카메라 화면이 교차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대본, 즉흥연기,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완전히 흐려진다.
이는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혼란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재현한다.
다만 관객의 판결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연극 실험'이라는 측면에는 다소 의문이 남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유럽을 덮치는 기후 위기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스톡만을 오늘날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 중 한 명인 바그너 모우라가 연기하는 상황에서 과연 매일 밤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이 맥락 안에서 서사가 유럽 관객에게 진정한 도전을 던질 수 있을까?
브라질에서는 파시즘이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날카로운 현실성을 지니지만, 유럽 무대에서는 공동 창작자들이 의도한 정치적 행동주의라기보다 하나의 지적인 연극 실험처럼 다가오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품은 탄탄한 앙상블이 든든히 받쳐준다. 배우들은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텍스트를 유연하게 이끌어간다.
시장 피터 스토크만을 연기한 다닐루 그랑게이아(Danilo Grangheia)는 형제 사이의 갈등을 날카롭게 구축한다. 절제되고 계산된 연기는 토마스 역시 단순한 정의의 화신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미묘한 의심을 심어준다.
딸 페트라 역의 줄리아 베르나트(Julia Bernat)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로서 두 남성 배우의 강렬한 에너지에 결코 묻히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작품의 중력 중심은 바그너 모우라다. 비밀요원(The Secret Agent)에서 보여준 날것의 강렬함과 자기장 같은 조용한 카리스마를 그대로 발산하는 그의 무대 존재감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스터 클래스다. 제4의 벽을 허물고 객석에 말을 건네든, 갈등하는 반영웅과 메타적 해설자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든, 그의 에너지는 공연장 전체를 장악한다. 그 설득력은 작품이 드러내는 오늘날 사회의 균열을 끝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비록 〈민중의 적, 그 이후의 재판(A Trial after An Enemy of the People)〉가 스스로 지향했던 혼돈의 '연극 룰렛'을 끝까지 실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프로젝트의 규모와 의미만큼은 실로 거대하다. 이 작품은 유럽을 대표하는 세 문화예술 기관인 홀란드 페스티벌(Holland Festival),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의 공동 위촉으로 탄생했으며, 그 자체로 깊은 역사적 계보를 지니고 있다. 1947년에 출범한 이 세 페스티벌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열된 유럽을 치유하고, 국경을 초월한 예술적 교류를 회복시키며, 경제적 절망과 극우 이데올로기의 물결에 맞서겠다는 시대적 사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8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다시 그때와 같은 균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은 깊은 아이러니이자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작품이 제시하는 위기는 놀라울 만큼 절박하면서도, 그 한가운데에는 쉽게 꺼지지 않는 인간의 회복력이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마스 스토크만의 연설을 통해, 크리스티아누 모우라(Cristiane Jatahy/Moura)는 무대가 지닌 초월적인 힘을 절제된 방식으로, 그러나 강렬하게 일깨운다. 바로 그 순간, 이 작품은 비로소 진정한 치유에 도달한다.
이 작품은 예술이 단지 우리의 정치적 상처를 비추는 거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예술은 우리가 함께 모여 성찰하고, 저항하며, 결국 인간의 영혼을 다시 빚어낼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근원적인 피난처이자 공동의 의식(ritual)인 것이다.
공연 사진 ©Caio Líri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