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위아와 함께 들여다보는 창작의 세계. 공연예술계를 만들어가는 관계자들의 전략적 통찰과 진솔한 성찰을 전합니다.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마주하는 것
누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언제나 애도와 이해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상실 앞에서 사람들은 이유를 찾고, 설명을 요구하며, 때로는 그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로 책임을 전가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수많은 가정을 남긴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조금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은 반복되고, 그 질문은 결국 특정한 사람을 향하기도 한다.
DAC Artist(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 선정된 극작가 이경헌은 세상에 대한 섬세한 인식을 바탕으로 시간, 기억,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극작가다. 연극 빈자리 없음은 자살 사별자 3부작 마지막 작품으로 한 학생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출발해, 상실을 둘러싼 죄책감과 의심, 그리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들여다본다.
자살 사별자 3부작을 이경헌 작가와 함께 호흡을 맞춘 연출 신명민은 애도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속도로 상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여섯 인물의 복잡한 내면과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무대에 담아낸다.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람
빈자리 없음에서 주은은 예지와 가장 가까웠다는 이유로 죽음에 관한 설명을 요구받는다. 가까웠다는 사실은 예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동시에, 누구보다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림 또한 예지의 담임을 맡았지만 자살의 전조 증상을 알아채지 못했으며 사후에도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겨진 주은의 담임을 또 한번 맡게 된다. 예지는 이미 떠났지만, 남은 사람들은 예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떠안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과 가까웠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내면을 전부 알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누구도 타인을 완벽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지의 선택에 대한 답을 요구한다. 주은은 침묵하고 이림도 ‘내가 담임을 맡지 않았더라면’하고 자책한다.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반드시 실제 책임의 크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죄책감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일까지 자신의 몫으로 끌어안게 한다.
주은은 예지의 환상을 보며 자살에 이르기까지 방관한 선생님들에게 “안예지랑 같은 걸 느꼈으면 좋겠다”며 복수를 계획한다. 하지만 상황을 설계하던 중 주은도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주은도 예지의 죽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람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원인을 살피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책임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한 사람을 손쉽게 원인으로 규정하고, 그 사람의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지워버린다는 점에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보다 쉬울 수 있다. 그러나 비난의 대상이 정해졌다고 해서 죽음의 의미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며,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교실 속 ‘미분된 세계’
예지의 내면이 반영된 ‘미분된 세계’는 극 전개에 변환점을 던져준다. 교무실, 상담실, 그리고 교실 속에서 기댈 곳 없던 예지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마음과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자신의 작품인 ‘미분된 세계’에 담겨있다. 자신을 믿어줄 사람 단 한 명이 필요했던 예지는 주은이 자신을 위한 복수를 시작하자 생전 주은과 함께 읽었던 ‘미분된 세계’를 다시 읽는다. 주은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음을 가지는 순간, 예지의 '미분된 세계'는 회색빛 교실에서 형형색색의 조명이 비추는 다채로운 교실이 되었다.
작은 무대 안에서 교무실, 상담실, 교실 이 모든 공간은 핵심 오브제를 중심으로 구현되었다. 학교 안에서는 어디에 놓여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책상과 의자가 인물들 간 첨예한 대립의 중심이 되었다. 예지가 자신의 책상과 의자를 옥상으로 들고 올라가는 장면, 주은이 예지를 잃고난 후에 책상과 의자를 교실에서 교무실로 옮겨놓는 장면을 통해 오브제의 이동으로 공간의 이동을 구현했다. 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예지와 주은이 어떻게 공동체에서 고립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애도만이 죽음의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의 자문과 이해자료를 쓴 고선규 임상심리학 박사는 말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특히 자살로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 그 욕망은 더 간절하다”며 “애도는 알 수 없는 것을 끝내 알아내는 일이라기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남아있음을 견디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운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는다. 빈자리 없음은 죽음의 이유를 단정하기보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묻는다. 이해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우리는 정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필요한 것은 끝내 알 수 없는 것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곁에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연극 〈빈자리 없음〉은 10월 28일부터 11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됩니다.
한혜원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