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진실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 은 자신의 출생과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진실을 추적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이 비극은 흔히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이미 정해진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진실을 외면하기보다 밝히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여기서 질문은 우리는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진실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묻게 된다.
오늘날에도 오이디푸스 왕 이 무대 위에서 반복되는 이유는 이 질문들이 여전히 현재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비극이라도 운명과 인간의 의지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무대 위에 진실과 파멸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지에 따라 관객이 마주하는 오이디푸스는 달라질 수 있다.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Ⅲ:오이디푸스와 수컴퍼니의 오이디푸스와 를 비교하는 일 역시 두 작품의 연출적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두 무대가 고전 속 인간의 비극을 어떤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오늘의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남기는지 살펴보는 과정이다.
완벽한 인간이 아닌, 편견과 차별을 견뎌온 소수자, 오이디푸스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Ⅲ:오이디푸스는 익숙한 비극의 질문을 거스른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는지 묻는 대신,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인간의 완전함을 규정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들을 어떻게 사회의 바깥으로 밀어내는지 질문한다. 여기서 완전함이란 도덕적 완결성이라기보다 지혜와 통치 능력을 갖춘 이상적인 인간상에 가깝다. 강량원 연출은-낯설고 절제된 언어의 흐름과 분절, 신체 움직임에 집중하며 연극 작업을 해온 연출가이다. 오랜 기간 배우들과 의견을 모으고 접목시켜 작품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구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장애인이자 이주민인 오이디푸스를 통해 ‘완전함’의 통념을 뒤집는다. 오이디푸스는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함을 경험한 존재이기에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과 다른 존재를 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오이디푸스 개인의 비극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재난의 원인을 누구에게서 찾고, 누구를 배제하며, 누구의 목소리를 해결의 과정에 포함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공동체가 어떤 존재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동물과 금강석 등 비인간 주체들의 등장으로 인간의 행동을 기록하고 증언하여 공동체적 관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더불어 거대한 장벽으로 무대를 가로막아 무대의 4분의 1만 사용하여 단절된 세계를 표현한다. 하지만 이 또한 극의 후반부에서는 장벽이 걷히고 무대가 확장되면서 단절된 세계에서 벗어나 비인간적 주체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즉, 스스로 눈을 찔러 사회적 소수자가 되었음에도 어떻게 운명을 수용하고 새로운 세계 ‘황야’로 향하는지 보여준다.
결국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Ⅲ:오이디푸스가 제시하는 비극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한 인간의 실패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사회가 어떤 기준으로 공동체의 경계를 만들어왔는지 되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일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렇게 완전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존재들이 불완전함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고대 비극의 본질, 운명 앞에 무너진 인간
수컴퍼니의 오이디푸스가 보여주는 비극은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이 결국 그 필연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에 있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가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탐구가 결국 자신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역설은, 인간의 의지와 이성이 신의 질서 앞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오이디푸스는 무지하거나 무능한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와 판단력을 지닌 진취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출생과 운명에 관한 진실만큼은 알지 못했고, 오히려 운명 에 부딪혀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여기서 비극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인간의 영역을 넘는 질서는 여전히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비극의 필연성은 수컴퍼니의 오이디푸스가 인물의 내면과 비극적 상황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대사를 통해 오이디푸스가 처한 상황과 심리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미니멀한 무대 안에서도 비극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관객이 인물의 파멸을 보다 선명하게 마주하도록 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핵심 요소인 코러스의 확장은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시선을 교차시키며 극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또한 비인간적 주체들의 등장과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사건의 비극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비극적 상황을 관객이 각자의 상상으로 채우도록 열어두기보다, 운명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전달한다.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Ⅲ:오이디푸스는 사회적 소수자와 공존하는 비인간적 주체들의 시선으로 비극의 해석 관점을 확장하여 인간의 완전함과 공동체의 의미를 되묻는다면, 수컴퍼니의 오이디푸스는 운명 앞에 좌절하는 인간의 한계와 비극의 필연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두 작품은 같은 고전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는 인간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의지로 넘어설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마주하게 한다. 수천 년이 지난 오늘도 비극이 유효한 이유는 이처럼 인간의 삶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비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앞에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한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사진 제공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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