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선 위에서 살아가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선을 넘어가며 살고 있다. 휴전선처럼 이름이 붙고 명백히 보이는 선도 존재하지만, 영토와 자원, 개인의 권리와 생활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선들이 훨씬 많이 존재하며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몫을 지키기 위해 크고 작은 선을 넘나든다. 그렇다면 선을 '살짝' 넘은 대가는 어디까지인 걸까?
장난으로 그은 선, 사소하게 시작된 갈등
원작은 일본 극단 MONO의 대표 츠치다 히데오가 2012년 발표한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少しはみ出て殴られた)이다. 이 작품은 2015년 11월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김광보의 연출, 김은성 작가의 각색으로 LG아트센터에서 한국 초연되었고, 이후 동쪽의별이 공식 라이선스를 취득해 심야연극제에서 다시 선보였다. 경범죄로 수감된 이들이 장난삼아 교도소 안에 선을 긋고 '국경'을 만들면서, 평온하던 일상이 선 하나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사소한 갈등이 겹겹이 쌓여 인간 군상의 민낯과 비극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글을 통해 확인한 내용은 지진 이후 일본 사회가 "너무 살벌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하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나 사회 시스템을 말하기 전에 인간 자체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내용을 알게 되었다. 본 공연은 이야기를 대한민국의 정서에 맞게 동쪽의 별은 가상의 국가로 각색하여, 특정 사건에 머물지 않고 주제와 메시지에 몰입할 수 있게 선보인 작품이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새롭게 담긴 이야기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여러 지역의 출신들로 나누어진 경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들과 교도관 등 한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와중 정부에서 지정한 새로운 국경선으로 인하여 교도소가 반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에 서로 다른 지역으로 속한 인물들은 갑자기 생긴 ‘선’으로 인해 발생되는 이기적인 욕망과 갈등이 커지면서 생기는 블랙 코미디 연극이다. 내용으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을 단순한 군상극이나 소동극으로 해석하기에는 평면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와 형식을 통해 주제의 무게를 덜어주고 극의 리듬을 만들어, 관객이 웃음과 부조리함을 동시에 느끼며 극의 긴장감을 완급조절해 서사를 따라가게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극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 무게에 벗어나 연극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기의 끝까지 보게 만드는 핵심 장치라고 여겨지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품에 내포된 블랙 코미디 장르가 형성하는 다양한 특성들(코미디, 부조리, 아이러니 등)로 작품에서 발생되는 주요 갈등에서 보이는 폭력성과 잔혹함을 온전히 객석에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상황을 회피할 수 있어 관객들이 주제를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다.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활용하여 날카로운 사회 풍자를 웃음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선보일 수 있다고 보인다.
와즈디 무아와드의 '화염'을 떠올린 이유
이 작품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와즈디 무아와드의 전쟁 4부작 중 하나인 화염이 떠올랐다. 겉으로는 닮은 점이 없어 보이지만, 두 작품은 '선'과 '침범'에서 맞닿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화염은 결과에서 출발해 어머니 '나왈'의 삶을 따라가며 선이 어떻게 생겼고 침범이 어떻게 쌓였는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대로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선이 탄생하게 된 시작점에서 나아가 선을 넘나들며 차이가 차별로, 차별이 분쟁으로 변하고, 마침내 가장 굳건한 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앞에서부터 보여준다.
두 작품의 서사를 겹쳐서 볼 때 서로 교집합이 되는 공통점들이 발견하게 된다. 그 교집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생각난 장면이 화염 17장 '크파르 라야트 고아원'에서 의사가 하는 말이 이 작품과 겹쳐진다.
누가 누굴 향해 왜 쏘는지도 모르는 거죠. (중략) 이게 바로 전쟁입니다.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만. 제 기억이 거기에서 멈춰 버렸죠.
선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구성된 집단에 의해 어느새 만들어지고 이름이 붙고 자리를 잡고 존재하게 된다. 선은 단순히 존재했을 뿐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것은 선으로 갈라진 사람이며, 작품은 그 점을 흔들림 없이 보여준다. 다만 화염과 달리 이 연극은 끝에서 다시 선을 허물고, 이해와 용서라는 다음 단계를 선보이며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배우에게 집중하게 하는 무대
무대는 오브제 중심으로 간결하게 꾸며, 관객의 시선이 인물과 배우의 연기에 머물도록 연출을 한 작품이다. 이동규 연출가는 작품을 통해 배우들의 앙상블이 어우러져 극 중 인물의 몰입감을 극적으로 올리고자 연출한 방향성을 담았다. 무대의 오브제를 이동하고 끈으로 선을 상징적으로 활용한 무대 구성의 간결함을 통해 배우들의 호흡에 힘을 싣는 선택을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배우들이 함께 연출진과 인물 분석 그리고 극의 메시지 등을 대한민국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마음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선보일 수 있을지 고심한 흔적들이 다분히 묻어 나는 작품이 되었다.
극 중 각색된 배경에 대한 이해도 및 장면의 즉각적인 정보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극장의 미디어 월에 이미지와 영상을 활용하여 작품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과 연출 없이 관객들에 접근성을 높인 점은 영리한 장면 전환 연출이었다. 이를 통해 극 중 인물의 장면 전환 시간을 여유롭게 확보하는 점과 관객의 극을 따라가는 흐림이 깨지지 않는 효과를 제공한 점에서 노련한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각자 수없이 존재하는 무수한 선들
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선 너머의 이해와 용서가 있어야 다음으로 나아갈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러 나라 사이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우리는 수많은 선들을 넘으며 각자의 공간을 분리하고 고립이 심해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현재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을 허물게 된다면 우리는 아직 만나지 못한 새로운 장면들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 과정에서 영토와 자원과 역사를 잃더라도, 서로의 존재와 생명까지 잃지는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묻는다.
당신의 곁에는 어떤 선들이 그어져 있는가.
공연 사진 ©극단 동쪽의 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