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없음>, DAC Artist 이경헌 극작가 인터뷰
세상이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고 정돈되기를 바랐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에서 1을 뺐을 때 정확히 0이 되는 수학적 계산과 달리, 현실에서 한때 선명하게 존재했던 이의 부재는 결코 '0'이라는 깨끗한 무(無)로 환원되지 않는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의 상태와, 한때 선명히 존재했으나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부재의 무게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살 사별자와 그 주변인들의 위태로운 내면을 파고들며 동시대 연극계에 묵직한 화두를 던져온 작가 이경헌. <서재 결혼 시키기>, <감정 연습>에 이어 자살 사별자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신작 <빈자리 없음>으로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무대에 돌아온 그가 그려낸 세계 역시 바로 이 부재의 오차 위에 서 있다.
신작 <빈자리 없음>은 가장 친했던 친구 '예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겨진 '주은'이 통과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른들은 비극을 잊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교실 안 예지의 책상과 의자를 서둘러 치워버리지만, 주은은 무수한 질문 속에서 침묵을 지킨 채 스스로 책상을 옮기며 소리 없는 항의를 이어간다. 연극은 상처를 외면하고 진정한 애도를 가로막는 학교라는 공간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남겨진 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부재를 감각해 나가는 과정을 정직하게 포착해낸다.
결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부재의 무게를 쥐고, 그가 내어놓은 언어들을 따라가 보았다.
극의 설계도를 넘어 독립된 문학으로
하나의 연극이 무대 위에 올라서기까지 희곡은 흔히 공연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나 미완의 설계도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이경헌 작가가 지어낸 텍스트는 무대라는 물리적 공간에 귀속되기 이전에, 그 자체로 온전한 호흡과 완결성을 지닌 문학적 결을 품고 있다.
202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래빗 헌팅>) 등단 이후 <사슴 죽이기>, <감정 연습>을 거쳐 두산아트센터 DAC Artist로 선정되기까지, 그가 단단하게 쌓아온 창작의 여정은 문학으로서 희곡의 자리를 지켜내는 동시에 무대 위 동료들을 향한 신뢰 속에 희곡의 여백을 비워내는 법을 배워온 시간이기도 했다.
"저는 제 정체성을 연극보다 문학에 가까운 위치에 두려고 노력합니다. 문학이라는 범주에서 글을 쓰는 것과 연극이라는 범주에서 글을 쓰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할 텐데요. 저는 희곡을 쓸 때 연극을 만드는 설계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된 형태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창작진이 채우는 만큼 텍스트를 덜어내는 방식을 지향합니다. 등단 이후부터 변화한 것은 창작진에 대한 구체적인 신뢰가 생긴 것입니다. 최근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희곡을 쓰는 중에도 빈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의식하는 중입니다."
기억과 기록의 경계에 고이는 언어들
연극 <빈자리 없음>의 교무실에서 노현희 교사와 임윤준 교사는 ‘기억’과 ‘기록’이라는 대립된 가치를 두고 마찰한다. 지나간 비극을 어떤 태도로 포착하고 간직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 질문은, 이경헌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의 대사가 지닌 특유의 건조함과 팽팽한 긴장감은, 인간이란 결코 자신의 진심을 표면에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 존재라는 관찰에서 비롯된다. 말의 표면이 아무리 온화하거나 차가울지라도 그 밑바닥에 넘실거리는 진짜 의도를 포착해내는 일. 작가가 일상의 순간순간을 집요하게 수집해 나가는 정직한 행위는, 그대로 희곡의 세밀한 결이 되어 무대 위에 새겨진다.
"저는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어요. 매일 짧은 메모를 30개 정도 작성하는데, 메모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요소는 ‘작성 시간’입니다. 내용만큼 중요한 게 그것을 떠올린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희곡은 '기억에 대한 기록'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희곡을 쓸 때는 현재의 고민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제가 대사를 쓸 때 신경 쓰는 부분은 표면보다는 내면입니다. 따뜻한 말을 하는 의도는 차가울 수 있고, 차가운 말을 하는 의도는 따뜻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순간은 오히려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연대에서 구조적 모순으로: 자살 사별자 3부작
상실의 비극 그 자체보다 '사건 이후 남겨진 이들의 세계'를 정직하게 포착해내는 일은 이경헌 작가의 창작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축이다. <서재 결혼 시키기>와 <감정 연습>을 거쳐 신작 <빈자리 없음>으로 이어지는 자살 사별자 3부작은, 상처받은 이들이 통과하는 시간의 결을 따라 그 시선의 깊이를 점차 넓혀왔다.
타인의 아픔이나 예민한 비극을 무대 위에 올릴 때 작가가 지니는 태도는 몹시 신중하고 엄격하다. 스스로 단정 짓는 오만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객관적인 자료와 관점을 교차시키는 그의 창작 방식은, 비극의 남겨진 시간을 다루는 작가로서의 균형감을 잡아주는 중심축이 되어준다.
"저는 같은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희곡을 동시에 구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편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관점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서재 결혼 시키기>와 <감정 연습>은 자살 사별자 ‘현성주’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다른 상황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어요. 두 희곡을 쓰는 동안에는 자살 사별자들이 애도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구조적 모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빈자리 없음>은 주제적 변주라기보다는, 그 당시 가졌던 현재적 고민을 반영한 결과에 가까운 것 같아요.
특정한 희곡을 구상하는 시기가 아니라면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곤 해요.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특정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 이후에는 제가 쓰려는 희곡과 관련된 책을 읽습니다. 귀납적 방법과 연역적 방법을 순서대로 사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빈자리 없음>처럼 예민한 소재를 다루는 경우에는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과정을 포함하려고 노력해요. 개인적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니까요. 사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함부로 차가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부로 따뜻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합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대 위, 작품의 해상도를 올리는 일
작품 속에는 "네가 사라진 이후에도 나는 미분된 세계를 걸었다"는 문장과 함께, '미분된 세계'나 '0과 극한값' 같은 수학적 개념들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가장 논리적인 수학의 언어로 결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부재의 오차를 다룬 이 대립은, 세상을 자기 편의대로 단순하게 해석하려는 어른들의 오만한 판단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러한 희곡의 레이어는 오랫동안 창작을 함께 그려온 ‘신명민’ 연출가의 시각을 거치며 또렷해진다. <감정 연습>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텍스트와 무대를 교감하며 깊은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희곡 속 추상적인 감각들을 Space111 무대 위에 가장 높은 해상도로 번역해내는 든든한 동력이 되어주었다.
"<빈자리 없음>을 구상하는 동안에는 제 고등학생 시절을 자주 떠올렸어요. 그 시기에는 세상이 수학처럼 명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기억나요. 세상에는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거든요(여전히 그렇지만……).
예를 들어 수학에서 1-1=0이지만 현실에서 1-1=0이 될 수 없어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한때 존재했지만 부재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복잡한 세상을 수학처럼 이해시키려는 어른들에게 반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특정한 현상을 편의대로 해석할 때 발생하는 오차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신명민 연출가는 제가 희곡을 쓸 때 고민한 부분을 항상 더 높은 해상도로 무대에 구현해내요. 같이 작업할 때마다 제가 쓴 인물의 마음을 저보다 잘 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 부분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작가 입장에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빈자리 없음>을 쓸 때는 한계를 의식하지 말고 편하게 쓰라는 말을 해주었어요. 그게 희곡을 쓸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만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극의 결말에 이르러 인물들은 비극을 잊고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교실에서 억지로 치워버렸던 예지의 '빈자리'를 비로소 직접 만들어 마주한다. 부재를 외면하거나 억지로 지우려 애쓰는 대신, 그 빈자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껴안는 것. 이경헌 작가는 이것이 보편적인 정답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비극 이후를 살아가기 위해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어떤 기억은 언급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사라져요. 반면에 어떤 기억은 언급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약 언급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을 기억이라면 (힘들겠지만…) 그것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 대사 중에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만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라는 것이 있는데요, <빈자리 없음>이 끝나는 순간이 주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게 올바른 방식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문학이나 연극의 역할은 보편적인 정답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상처의 자리를 건너다보는 일은 내 안의 아픔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넘어진 자리를 가만히 인정해 본 이만이, 곁에 선 누군가가 지나왔을 깊은 고독과 그 무게를 감각해낼 여백을 얻기 때문이다. 정답 대신 하나의 가능성을 내어놓은 작가의 시선은, 그렇게 타인의 누군가에게 마음의 한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 한 걸음을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은, 그 사람이 어떤 시간과 감정을 통과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빈자리 없음>을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인물의 폭이 조금이라도 넓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빈자리를 떠올리려는 마음이든, 혹은 그 빈자리를 떠나보내려는 마음이든 인물들의 시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비워야 비로소 시작되는 일
<빈자리 없음>은 슬픔의 통쾌한 해답이나 깔끔한 결말을 제시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저 비극이 지나간 자리에 가만히 서서, 쉽게 덮어두거나 치워버릴 수 없는 마음의 흔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내어줄 뿐이다.
우리는 흔히 부재를 '결핍'이나 '서둘러 지워내야 할 상처'로 간주하곤 한다. 교실 안에서 죽은 아이의 책상과 의자를 억지로 치워버렸던 극 중 어른들의 행태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처를 외면하고 덮어둔다고 해서 지나간 기억이나 존재의 무게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서둘러 채우지 않고 가만히 비워둘 때, 우리는 비로소 이미 세상에 없는 누군가가 지나온 시간, 그리고 그 곁에 남겨진 이들이 통과하고 있는 고독의 깊이를 상기하게 된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 남겨진 빈자리를 마주한 채 극장 문을 나설 관객들에게, 그 마음의 공간이 더 이상 피하고 싶은 공허나 상처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그 빈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누군가는 지나간 기억을 다시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서툴게나마 그 마음을 떠나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의 끝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와 지나온 자리를 헤아리며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연극 〈빈자리 없음〉은 10월 28일부터 11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됩니다.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