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설렘이 움트는 가을. 매년 서울광장과 빌딩 숲 사이를 누비며 시민들의 일상에 예술을 끼워 넣던 '서울거리예술축제'가 올해는 조금 특별한 장소로 옮겨왔다. 그동안 서울광장과 청계천 등 도심 한복판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축제는 올해 뚝섬한강공원과 서울숲 전체를 무대로 삼았다. 탁 트인 강변과 바람, 잔디가 어우러진 공간 위에서 9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펼쳐진 공연들은 익숙했던 도시의 풍경을 낯설고 새로운 장면으로 바꾸어놓았다. 비어 있던 도시의 여백에는 예술이 들어섰고, 평범했던 산책길은 어느새 거대한 공연장이 되었다.
올해 축제는 프랑스 초청작 세 편을 비롯해 해외 및 국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로 채워졌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상과 도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작품들은 한강과 서울숲이라는 열린 공간 안에서 더욱 자유롭게 관객과 만났다.
단연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컴퍼니 오프의 기린들, 동물들의 오페라였다. 높이 8m에 달하는 붉은 거대 기린 일곱 마리가 한강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거대한 기린의 움직임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이동했고, 디바의 오페라 선율과 불꽃 퍼포먼스가 더해지며 평범했던 한강의 저녁은 이색적인 환상극장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기린을 따라 뛰었고, 어른들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거대한 존재들이 뚝섬의 풍경 속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공연과 관객,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흐려진 채 축제의 열기는 말 그대로 뚝섬 곳곳을 휩쓸었다.
크타 컴퍼니의 우리는 원해는 시민을 공연의 중심으로 불러들였다. 사전 공모를 통해 선발된 100명의 시민배우가 무대에 올라 각자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모든 말은 “우리는 원해”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적인 바람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사회를 향한 목소리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욕망과 소망을 말하는 순간, 공연장은 특정한 배우들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목소리가 오가는 장소가 된다.
지.비스타키의 빨랫줄 역시 익숙한 일상의 행위를 낯선 풍경으로 확장한다. 빨래라는 평범한 행위를 통해 일상이 만들어내는 폭풍을 그려낸 작품은, 평범한 공간을 감각적이고 압도적인 시각적 장면으로 바꾸어놓았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된 이력이 있는 리퀴드 사운드의 Vocal Space 조각눈을 비롯해 모므로살롱의 성인물, 연희집단 The 광대의 52Hz, 231쇼의 231의 스케치북 등은 한강과 도시라는 열린 공간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관계와 일상을 다양한 감각으로 풀어냈다.
특히 거리예술이라는 형식은 작품이 특정한 극장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관객은 정해진 좌석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는 대신, 산책하다가 작품을 발견하고,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과 우연히 공연을 마주친 사람이 같은 장면을 공유한다. 그 우연성이야말로 거리예술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순간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모든 공연에서 무대와 객석을 구분 짓는 막이 없었다는 점이다. 산책을 나왔다가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라며 눈을 반짝이던 지역 주민. 공연을 기다리며 잔디밭에 앉아 있던 가족. 아티스트 명찰을 달고 시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다른 팀의 공연을 응원하던 해외 예술가들. 누가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고, 누가 공연을 만드는 예술가인지 잠시 잊게 되는 순간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졌다.
뚝섬한강공원에서의 서울거리예술축제는 공연장을 벗어난 예술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산책길과 잔디밭, 강변과 일상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무대 위 예술가와 객석의 시민이라는 이분법이 사라진 자리. 그곳에서는 발걸음을 멈춘 모든 사람이 축제의 일부가 되었고, 우연히 마주친 한 장면조차 하나의 공연이 되었다.
올가을, 서울거리예술축제가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새로운 공연장이 아니었다. 익숙한 도시를 조금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새로운 시선, 그리고 일상과 예술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를 잠시 지워내는 경험이었다. 어쩌면 거리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공연이 시작되는 때가 아니라, 평범했던 하루가 어느 순간 예술이 되어버리는 바로 그 찰나에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