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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WeAre Theatre Club

먹어야 사는, 먹혀야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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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30 22:42Views 16

연극 <갱更 >을 관람하고


시놉시스

재정난을 버티며 운영을 이어가는 청년 창업 조리실에는 각기 다른 시대를 통과해 온 세대들이 모여 음식을 만든다. 학교 급식실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든 피영은 조기 갱년기 진단을 받고 상실해 가는 자신의 몸을 마주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할아버지의 등장에 피영은 부양을 거부하며, 엄마 금옥과 함께 그가 가져온 산재 보상금을 두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시놉시스를 읽고서 단순히 가족 간, 세대 간의 갈등이라 생각하고서 갔던 생각을 깨부숴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연극이 언제나 현실 일부분을 잘라내 그 부분을 크게 확대하여 보여주는, 세상의 어느 곳에서 존재하는 일이나 관객이 현실에서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갱>은 정확히 그 생각과 일치하면서도 너무나도 현실적인지라 정말로 2026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우는 것도 웃는 것도, 몰입해 관람하는 것도 경험해 보았지만,

무대 위에서 올라와 있는 이야기가 주는 주제 의식이 아닌, 이야기 자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갱>은 정확히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나도 그 일부분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람을 하기로 선택한 것이 정말 후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21세기 대한민국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 단순히 연극뿐만 아니라 책, 드라마, 영화 모두 관객의 경험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부분을 배경으로 한다면

행동, 대사, 대사의 톤까지 쉽게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텐데도,

<갱>의 모든 배우가 정말 훌륭한 연기를 펼쳐주어서, 어색하다거나 이질적이라 느낀 부분이 없었고 즐거웠던 관람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작품의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생각보다도 더 직설적인 부분으로 먹고 먹히는 인간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어요.

시놉시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세대 간의 차이, 조리실이라는 장소, 취업이 아닌 창업이라는 환경과 나이 듦, 돈, 부양, 살아감...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당연하게도 늙은 몸을 커다란 솥 안에 밀어 넣고 그걸 해체하고, 끓이고, 조리하여 먹고 마시던 장면이었습니다.

조리실이라는 배경으로 인간을 음식으로 만들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던 그 풍경이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네요.

정말 직설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에 인간의 부위에 가격이 매겨지고 그것을 팔아 돌아가는 세상이 순간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꼭꼭 씹어 삼켜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자연의 논리와 잔인한 현실을 잔인하고 힘들다고 느끼는데

이러한 점은 살아가는 한 벗어날 수 없고 사실상 죽은 이후에도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이라는 점에서 더욱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그렇게 보여주고, 직시하게 하고 다시 또 살아가기까지 하는 극을 보고서 현실을 보면,

이 모든 이야기를 본 이후이기에 속이 울렁거리고 음식을 먹을 마음도 뚝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인생은 살아진다는 것이 뭔가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그런 것이 인생이라는 것의 본질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우울해지다가도 그렇기에 동물은 혼자서 살아가기 어려워 무리를 지은 것일까,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을 먹어야 하고 남도 살기 위해선 나를 먹어야 하니까 우리는 먹고 먹히기 위해 모여 사는 것일까,

내가 이런 지점을 역겹다고 느낀다면 살아간다는 행위의 고결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정말 그 지점을 내가 그렇게 부정적으로 느껴도 되는 것이 맞을까? 와 같은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다른 존재를 양분 삼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갱> 이라는 연극의 이름처럼 이 모든 일들에도 '다시' 죽을 입 안에 넣어 삼키었던 피영의 결말처럼 저도 이 일련의 이야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곱씹어 소화를 시킬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네요.


다음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필연들을 우리는 무시해왔어요”라는 대사가 깊게 남았습니다.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정말 많은 표지들이 널려 있었고 관객도 그러한 부분을 명확히 볼 수 있었는데,

할 일 없이 방황하는 할아버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선, 구분되지 않은 돌봄과 고용 등,

이 모든 것들을 외면하다가 결국에야 일어난 일을 사고라는 단어를 붙여도 되는 것일까, 하는 그 질문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아요.

사실 세상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이 옛날부터 내려올 정도로 인간은 언제나 뒤늦게서야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하게 되는데, 정말 언젠가는 이런 우연으로 인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이 듦, 그렇기에 필요 없음, 그렇기에 거슬림, 그렇기에 사회에서 배제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 라는 이 일련의 흐름에서

나이가 들어도 필요하다. 나이를 먹어도 노동할 수 있다. 더 오랫동안 노동할 수 있다는 정년의 연장이 정말로 완벽한 해답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제가 노동과 돈, 정년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어렵지만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자본주의 사회, 그 속에서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기에

정년을 늘린다는 건 그 기회를 더 넓힌다는 것이니까, 해답지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사실 완벽한 해답이란 건 나이 듦을 하나의 무쓸모한 특성이 아닌 시간으로서의 존중일 테고

다양함에 대한 존중, 우리를 먹여 살렸던 우리의 과거이자 앞으로 우리도 똑같이 될 미래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가 정말로 그렇게 이타적이고 존중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속상함도 들었습니다.


사진: 본인 제공
사진: 본인 제공

글 · 강예은 (히어위아 씨어터 클럽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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