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과 배우 박강현, 오랜 동행과 기다림 끝에 마주한 것들
외로운 소년의 편지: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사춘기는 누구나 유난히 외롭다.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지는데, 그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내가 발붙일 자리는 희미해져만 가고,
"내가 내일 당장 사라진대도 알아차릴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온 머릿속을 지배하는 경험은 모두 해봤을 것이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Dear Evan Hansen)은 바로 그 보편적인 외로움 한가운데 서 있는 소년, '에반 핸슨'의 이야기다.
영화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작사·작곡가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Pasek and Paul)이 음악을 맡아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한 이 작품은,
2024년 한국 초연에 이어 2026년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재연 무대로 관객들을 다시 찾아왔다.
극 중 사회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고등학생 에반 핸슨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도,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서툴기만 하다.
치료의 일환으로 스스로에게 썼던 편지가 동급생 코너 머피의 손에 들어가고, 며칠 뒤 코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 편지는 코너의 유서로 오해받게 된다.
슬픔에 잠긴 코너의 가족을 차마 깨트리지 못했던 에반은, 존재하지 않았던 비밀 우정과 사과 과수원의 기억을 지어내게 된다.
현대 사회의 고독과 거짓이 만든 유토피아
대표 넘버 Waving Through A Window에서 에반은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들며 묻는다.
"누군가 날 알아봐 줄 사람 없나요?"
새 학기 첫날, 에반은 누구도 사인해 주지 않은 하얗고 깨끗한 깁스를 한 채 사람들에게 간절히 손을 내밀지만, 그 손짓을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고립은 에반만의 것이 아니다. 농담과 허세 뒤에 외로움을 감추는 재러드, 스펙과 대외활동에 집착하지만 "투명인간이 된 기분을 잘 안다"고 고백하는 알라나.
무대 위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우는 다층 LED 패널과 쉴 새 없이 울리는 SNS의 '좋아요' 알림음을 듣고 있자니,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고립이 느껴지는 듯하다.
팔로워와 조회수, 캠페인을 위한 모금액 등 수많은 디지털 신호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진짜 나’를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그렇게 연결된 듯 보이는 세상 속에서, 에반은 아무에게도 진심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소년은 하지 않아도 됐을 거짓말을 시작한다.
안타까운 점은, 에반의 거짓말은 악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에반이 나무에서 떨어져 팔을 다쳤던 그날은, 12미터 떡갈나무 위에 올라가 10분 동안 홀로 땅바닥에 누워
"누군가 오겠지, 누군가 날 구하러 오겠지"라고 중얼거리며 스스로 생을 놓아버리려 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For Forever'에서 에반은 그 절망의 순간을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사과 과수원에서 햇살을 받으며 함께 보낸 완벽한 여름날'로 바꿔 놓는다.
그 사과 과수원은 아무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누구도 손을 놓지 않으며 다치는 사람도 없는 에반만의 슬프고 아름다운 유토피아였다.
그 여름날의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코너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얻었고, 학교를 넘어 온라인 세상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1막의 클라이맥스 You Will Be Found에서 에반의 추모 연설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고,
수많은 타인들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합창에 동참한다.
이 거대한 연대와 위로가 거짓말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역설적이지만, 디지털 화면 너머로 서로에게 뻗었던 온기의 갈망만큼은 결코 가짜가 아니었다.
비록 거짓으로 쌓아 올린 울타리일지라도, 평생을 바랐던 온기와 다정함이 주어졌을 때 매번 외면받던 외로운 소년이 그 온기에 의지하고자 했던 마음을 우리는 절대 비난할 수 없다.
거짓이 밝혀진 후 찾아올 파멸을 알면서도 오열하며 진실을 고백하는 Words Fail 장면처럼, 소년은 스스로의 잘못에 괴로워하며 이미 충분히 부서지고 있었다.
지금의 세상은 타인의 약점을 쉽게 단죄하고, 오해와 혐오가 유행처럼, 전염병처럼 번져나가는 차가운 시대다.
누군가의 실수와 발버둥을 가혹하게 비난하고 낙인찍는 이 세상에서,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외로운 소년이 살기 위해 거짓이라는 울타리를 붙잡는 것 말고 과연 어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내 주변에 투명인간처럼 웅크려 있던 수많은 '에반'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먼저 따뜻한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소년이 했던 거짓말이 아니라,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우리의 방관과 무관심은 아닐까?
Only Us
이 작품이 가진 가장 슬픈 역설은, 진심을 숨기고 거짓을 말하는 상황 속에서 도리어 그토록 갈구하던 '진실된 사랑과 가족의 온기'를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늘 타인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보여야만 했던 에반.
그런 에반에게 조이는 Only Us라는 노래를 통해 과거의 아픔도, 대단한 증명도 다 필요 없다고. 그저 "너 하나면 충분하다(Only Us)"고 말해준다.
또한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란 에반에게 코너의 아버지인 래리가 야구 글러브 길들이는 법을 알려주며 시간과 정성을 내어주는 To Break In A Glove 장면 역시 마음이 아프다.
에반이 거짓의 울타리 안에서 경험한 다정함들은 소년의 텅 빈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울타리 안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공고히해가는 에반을 보며, 묘한 죄책감이 느껴진다.
꼭 완벽하고 솔직한, 거품 없는 본래의 모습으로만 사랑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비록 환상과 착각으로 시작된 관계라 할지라도, 그 순간 내가 느꼈던 위로와 나를 향해 있던 따뜻한 눈빛이 진짜였다면,
비록 불완전하고 엉망인 상태일지라도 그 온기 자체로 우린 충분히 살아갈 이유를 얻는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를 살게 하는 건 관계의 완벽한 진실성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다정함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작품은 이 아픈 고독과 혐오의 사슬을 끊어내는 열쇠가 거창한 완벽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떨고 있는 에반에게 아들 코너의 정장 넥타이를 가만히 건네주던 신시아의 손길처럼, 세상과 한 사람의 인생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은 아주 무조건적이고 작은 다정함이다.
이것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에반과 하이디가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거짓의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다시 벼랑 끝에 섰을 때, "내가 어떤 애인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면 엄마도 날 싫어할 거야"라며 무너지는 에반에게 하이디는 So Big / So Small을 부르며 굳게 약속한다.
"네가 어떤 애여도 엄마는 널 사랑해. 엄마는 절대 떠나지 않고 너의 곁을 지킬 거야."
내가 정말 최악이고 엉망진창이어도,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이 믿음이야말로 에반을 거짓의 도피처에서 이끌어내 진짜 세상으로 걸어 나오게 했다.
6월의 어느 여름날, 나의 에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 이는, 지난 10년 간 꾸준히 눈에 밟힌 배우다.
도화지 같은 얼굴과 유독 청년미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다양한 역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온 배우.
같은 장면과 같은 노래에서도 매번 조금씩 다른 감정과 표정을 발견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무대를 계속해서 찾게 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이 작품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의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8년의 어느 날이었다.
브로드웨이를 뒤흔든 이 작품이 언젠가 한국 땅을 밟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영국이나 캐나다에 여행을 가서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오리지널 버전의 넘버를 계속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2021년, 오리지널 배우인 ‘밴 플랫(Ben Platt)’을 주인공으로 뮤지컬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불어 인상깊었던 것은, 영화 개봉 당시 홍보 콘텐츠에서 박강현 배우가 You will be found’를 부르는 영상을 봤을 때였다.
그가 데뷔하고서 이제 막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때라, 주로 창작 초연 공연들에 참여하였기에 ‘기다리고 있는 작품’에 그가 올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하지만 이 이후로 '혹시 한국 무대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3년 후인 2024년, 한국 초연에서 에반을 맡았고, 2026년 재연에서도 다시 에반으로 무대에 올랐다.
10년 동안 그의 무대를 지켜본 관점에서 말하자면, 박강현의 에반은 ‘투명하다’.
그러니까, 투명해서 속이 다 보일 정도로 미숙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캐릭터든 자신만의 색으로 흡수해버려서 마법같다.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에반에게는 나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년성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 구부정한 어깨, 땀에 젖은 서툰 손짓 하나하나까지.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자신을 화려하게 돋보이려 하기보다, 진심 어린 이야기 전달자로서 소년의 외로움을 가슴으로 품어 안는 그의 연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비난 불가한 에반'을 완성해 낸다.
거짓말이 들통나 오열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는 그를 비난하기보다 그 외롭고 투명한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어진다.
"정말 네가 세상을 망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라고,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야기를 무대에서 다시 만나고, 그 이야기를 애정하는 배우의 다른 해석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관객으로서 꽤 특별한 경험이다.
특히 같은 배우가 초연과 재연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작품을 다시 찾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무대 위에서 에반을 만날 때마다, 10년째 지켜봐 온 배우에게서도 여전히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 배우의 성장뿐 아니라, 같은 작품과 인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역시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서로를 기어이 발견하기까지
일본 만화 <원피스>에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있다.
"사람이 언제 죽는 줄 아나? ... 세상에서 잊혀졌을 때다."
진정한 죽음은 심장이 멈출 때가 아니라, 세상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아있지 않을 때, 즉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못하고 잊혀졌을 때 찾아온다는 뜻이다.
생전의 코너 머피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유령 같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에반의 거짓말과 '코너 프로젝트'라는 유토피아를 거치며, 코너는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비로소 다정하고 따뜻한 존재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늘 세상의 외곽을 서성거리며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들던 에반 역시,
타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고 발견해 주는 순간(You Will Be Found) 비로소 눈부시게 살아 숨 쉬기 시작했다.
비록 허상이었을지언정, 그 속에서 인물들이 나누었던 온기와 위로는 결코 가짜가 아니었다.
진심을 숨긴 거짓이라는 유토피아 안에서,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깊은 외로움과 진실된 사랑은 기어이 발견해내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당부는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롭고,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버둥 친다.
그 몸부림을 가혹하게 단죄하는 대신, 가만히 손을 뻗어 서로를 바라보아 줘야 한다는 것.
유리창 너머에서 투명인간처럼 웅크려 있는 내 곁의 누군가를 향해 눈을 맞추는 일.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너를 보고 있어”라며 서로를 기어이 찾아내어 발견해주고, 기억해 주는 일.
그렇게 계속해서 서로를 발견해주는 한, 아무리 어두운 밤일지라도 우리 중 그 누구도 세상에서 지워지거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2026년 8월 1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