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Study]
1. 클래식 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BBC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영국의 공영방송이다. 현재 BBC Proms는 이 방송사가 단순히 후원하는 공연이 아니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대표적인 공공 문화 프로젝트다. 그러나 Proms가 처음부터 BBC의 축제였던 것은 아니다. BBC는 1922년 민간 회사로 출범한 뒤 1927년 공영방송으로 전환됐다. 반면 Proms의 첫 공연은 그보다 27년 앞선 1895년에 열렸다.
즉 Proms는 BBC가 만든 축제가 아니라, 이미 독자적인 역사와 관객을 형성한 뒤 BBC를 만나 지금의 규모로 성장한 축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클래식 공연장은 정숙한 분위기와 정해진 좌석, 엄격한 관람 예절로 대표된다. 이러한 형식은 음악에 집중하도록 돕지만,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장벽이 되기도 한다.
BBC Proms는 그 장벽을 다른 방식으로 낮췄다. 무대 앞 아레나와 홀 상층 갤러리에는 저렴한 입석이 마련되며, 이곳에서 ‘일어난 상태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Prommers’라고 부른다. 초기 Proms에서는 흡연과 식음료, 관객의 이동까지 허용됐고, 오늘날에도 자유로운 복장과 적극적인 반응 등 비교적 편안한 관람문화가 이어진다.
축제의 마지막 공연인 ‘Last Night of the Proms’에서는 관객들이 영국 국기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국기를 흔들고 함께 노래한다. 프로그램 역시 현대음악과 신작 초연은 물론 영화음악, 게임음악, 재즈, 뮤지컬,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공연까지 한 시즌 안에 공존한다.
그렇다면 상류층의 문화로 여겨지던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이토록 개방적인 축제가 되었을까.
그 답은 Proms의 탄생을 설계한 두 사람과, 그 뒤를 이어 축제를 확장한 BBC의 운영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2. 상류층의 클래식을 시민의 문화로
Proms가 탄생한 1895년은 빅토리아 시대 후반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런던은 철도와 공장, 도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며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했다. 중산층이 확대되고 노동시간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저녁과 주말에 공연과 여가를 즐기려는 수요도 늘어났다.
그러나 당시의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귀족과 부유한 중산층,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문화에 가까웠다. 티켓은 비쌌고 공연예절은 엄격했으며, 노동자와 일반 시민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기는 어려웠다. 산업과 제국의 규모에서는 앞서가던 영국이 음악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뒤처져 있다는 음악계의 문제의식도 존재했다. 영국의 음악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곡가와 연주자만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지지할 시민 관객도 함께 성장해야 했다.
Proms는 이러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단순히 저렴한 공연을 한 번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관객으로 성장시키려는 사회적·교육적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3. 문턱을 낮춘 로버트 뉴먼, 관객을 성장시킨 헨리 우드
1895년 8월 10일, 공연기획자이자 Queen’s Hall의 매니저였던 로버트 뉴먼(Robert Newman)은 젊은 지휘자 헨리 우드(Henry Wood)를 음악감독으로 영입해 첫 Promenade Concert를 열었다. 두 사람의 역할을 음악경영의 관점에서 구분하면, 뉴먼은 공연의 운영 모델과 목표를 설계한 기획자였고 우드는 이를 프로그램과 연주로 실현한 예술감독이었다.
뉴먼은 저렴한 입석, 자유로운 분위기,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연장을 통해 클래식의 경제적·심리적 문턱을 낮췄다. 그는 처음에는 친숙하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 뒤, 점차 정통 클래식과 현대음악으로 프로그램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두었고, 관객의 현재 취향에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경험의 범위를 넓혀주는 전략이었다.
이는 오늘날 음악경영에서 말하는 ‘관객개발’의 초기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미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잠재 관객의 첫 방문을 유도하고 반복적인 공연 경험을 통해 음악적 관심을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아래는 차례대로 로버트 뉴먼, 헨리우드이다.
4. Proms의 위기, 그리고 1927년 BBC와의 만남
Proms의 초기 역사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고용하면서 저렴한 티켓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결국 뉴먼은 1902년 파산했고, 독일계 은행가이자 예술후원자였던 에드거 슈파이어(Edgar Speyer)가 재정을 맡아 공연을 구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영국 사회의 반독일 정서가 거세졌고, 독일 출신이었던 슈파이어는 후원에서 물러났다. 이후 음악출판사 채펠앤드코(Chappell & Co.)가 운영을 이어받았다.
1926년 뉴먼이 세상을 떠나고 채펠앤드코까지 지원을 중단하면서 Proms는 다시 존폐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때 BBC가 나섰다. 1922년 방송을 시작한 BBC는 1927년 공영방송으로 전환됐고, 같은 해 Proms의 공식 운영을 맡았다. ‘알리고, 교육하고, 즐거움을 준다’는 BBC의 공공적 목표와, 대중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여 새로운 음악의 관객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Proms의 창립 철학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BBC가 운영을 맡으면서 Proms는 Queen’s Hall을 찾은 사람만을 위한 런던의 음악회에서 전국적인 문화행사로 변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중계를 통해 런던에 살지 않거나 티켓을 구매할 수 없는 사람도 집에서 같은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1930년에는 BBC Symphony Orchestra가 창단돼 Proms의 중심 악단이 됐다. BBC는 이제 공연을 후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기획하고, 연주하고, 방송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1941년 5월 10일에는 개막 이후 줄곧 Proms의 본거지였던 Queen’s Hall이 런던 대공습의 소이탄에 파괴됐다. 그해 Proms는 공연을 포기하는 대신 Royal Albert Hall로 장소를 옮겼다. (Royal Albert Hall은 이전 아티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71년 문을 연 Royal Albert Hall은 ‘예술과 과학을 시민에게 확산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Proms의 공공적 성격과 잘 맞았다. 무엇보다 5천 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 원형 공연장으로, 대규모 입석과 축제형 관람문화를 이어가기에 적합했다.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이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Royal Albert Hall의 규모와 상징적인 공간은 Proms의 대중성과 시각적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다.
5. BBC는 Proms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BBC가 운영을 맡은 뒤 Proms는 런던의 인기 공연 시리즈에서 공연·방송·교육·창작·국제교류가 결합된 공공 음악축제로 성장했다. 음악경영의 관점에서는 그 변화를 재원 안정성, 매체 접근성, 제작 인프라, 브랜드 국제화라는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재원 안정성
초기의 Proms는 뉴먼과 개인 후원자의 재정 상황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는 민간 공연이었다. 저렴한 티켓과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시에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은 1902년 뉴먼의 파산에서도 드러난다. BBC의 운영은 Proms가 한 명의 기획자나 후원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계획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다.
공영방송은 흥행성과 공공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따라서 잘 알려진 작품과 스타 연주자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우지 않고, 당장 많은 티켓을 판매하기 어려운 현대음악과 신작 위촉, 어린이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에도 투자할 수 있었다. 저가 입석을 유지하면서 작품과 관객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는 점은 Proms가 단순한 흥행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공문화 프로젝트가 된 중요한 이유다.
2) 매체 접근성
공연은 원래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한 번 열리고 끝난다. 그러나 BBC는 Proms를 라디오로 중계하고, 이후 텔레비전으로 촬영하면서 한 번의 공연을 더 많은 사람이 반복해서 접할 수 있는 방송 콘텐츠로 전환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사람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텔레비전 시청자는 연주뿐 아니라 Royal Albert Hall의 규모와 Prommers의 반응, Last Night의 축제 분위기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BBC Radio 3와 텔레비전, iPlayer와 BBC Sounds가 더해지면서 공연 실황은 해설, 인터뷰, 작곡가 소개, 리허설 영상과 하이라이트 등 다양한 형태로 재가공됐다.
이러한 기록과 재유통은 새로운 관객이 클래식에 입문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입구를 만들었다. 또한 과거의 명연주와 신작 초연을 축적해 Proms를 여름에만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130년의 기록을 지닌 문화자산으로 만들었다.
3) 제작 인프라
BBC는 방송 채널뿐 아니라 BBC Symphony Orchestra, BBC Scottish Symphony Orchestra, BBC Philharmonic, BBC National Orchestra of Wales, BBC Concert Orchestra와 BBC Singers 등의 연주단체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1930년 창단된 BBC Symphony Orchestra는 Proms의 중심 악단으로 자리 잡았다.
자체 연주단체는 긴 시즌을 안정적으로 편성하고,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필요한 작품을 계획할 수 있게 한다.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도 충분한 연습을 거쳐 소개할 수 있으며, 새로운 작품을 위촉해 초연한 뒤 곧바로 방송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영화음악과 게임음악, 재즈와 대중음악의 협업처럼 기존 클래식 공연장이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기획도 가능해졌다. BBC는 공연을 기획하는 주체이자 연주자를 보유한 제작자이며, 그 결과를 배포하는 방송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4) 브랜드 국제화
BBC의 방송망과 국제적 인지도는 Proms를 세계에 알리는 기반이 됐다. 유럽방송연맹을 비롯한 국제 방송교류를 통해 공연 실황이 여러 나라의 방송사에 제공됐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도 Proms 출연은 한 공연장을 넘어 많은 청취자와 시청자를 만나는 기회가 됐다.
이후 BBC Proms는 공연 형식 자체를 해외로 확장했다. 2016년 호주, 2017년 두바이, 2019년 일본, 2024년 한국에서 현지판 Proms가 열렸다. 이 공연들은 영국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BBC 소속 악단과 현지 오케스트라, 작곡가와 연주자, 교육 프로그램을 결합했다. Promming의 고유한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개최지의 음악문화에 맞게 프로그램을 바꾼 것이다. 이처럼 BBC는 Proms를 단순한 공연명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재구성할 수 있는 국제적인 축제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6. 마무리하며
BBC Proms의 성공은 어느 한 기관이나 한 가지 전략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첫 번째 기반은 로버트 뉴먼과 헨리 우드가 만든 기획이었다. 저렴한 입석과 자유로운 분위기로 경제적·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친숙한 작품에서 정통 클래식과 현대음악으로 관객의 경험을 확장했다. Promming처럼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고유한 문화도 만들어냈다. 이는 다른 클래식 축제가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Proms만의 정체성이 됐다.
두 번째 기반은 BBC가 제공한 확장성이었다. 공영방송의 제도적 기반은 장기적인 운영과 신작 위촉을 가능하게 했고, 자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안정적인 제작 구조를 만들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공연장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관객을 찾아갔으며, 디지털 플랫폼과 국제 방송교류, 해외판 Proms는 축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확장했다.
결국 BBC Proms가 약 13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통을 그대로 보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1895년에는 저렴한 입석과 자유로운 분위기로, 1927년에는 라디오로, 이후에는 텔레비전과 디지털 매체로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췄다. 영화음악과 게임음악을 받아들이면서도 정통 클래식과 신작 초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BBC Proms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음악에 가까워질 수 있는 여러 개의 입구를 만들고, 그 입구를 통과한 관객을 더 넓고 깊은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바로 이러한 관객개발의 철학과 BBC의 공공적 운영 구조가 결합한 것이, 한 여름의 음악회를 130년 동안 지속된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시킨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