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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미로: 《굿나잇 스위트 프린스》와 호주 연극의 유연성

Desmond Chewyn

Desmond Chewyn

2026. 08. 05 01:12Views 3,819

외부인의 눈에 비친 호주 연극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바로 예술가들에게 있다. 이들은 경력의 어느 단계에서든 다양한 창작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러한 유연성은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끌어내리려는 호주 특유의 평등주의적 ‘톨 포피(tall poppy)’ 문화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가가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작품에 임한다면, 그 배경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은 깊이 매혹적이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연극 문화다.


시드니 연극계에서 올드 피츠 시어터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펍 아래 지하에 자리한 55석 규모의 작은 극장으로, 런던의 더 야드를 연상시키는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공간이지만 공간과 기술상의 제약은 훨씬 크다. 그럼에도 오늘날 활약하는 호주의 주요 배우, 작가, 연출가, 디자이너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이곳에서 실력을 갈고닦았음을 알 수 있다. 낡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는 이 공간은 영어권 최고의 비극 중 하나를 새롭게 압축해 선보이는 이번 작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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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스위트 프린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해체적으로 재구성한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각색작이다. 엘시노어 성이 포위되자, 궁지에 몰린 햄릿은 자신의 안식처로 숨어든다. 그곳은 성벽 안에 자리한 반쯤 폐허가 된 극장이다. 바깥세상이 혼돈에 빠져드는 동안, 햄릿은 자신의 삶과 미래,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마비된 채 무너져 가는 정신과 사투를 벌인다.


연출가 리젤 바도렉은 두 주연 배우이자 공동 각색자인 라즈 라바데, 잭 트웰브트리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원문을 능숙하게 엮어낸다. 두 배우는 공연마다 햄릿과 호레이쇼 역을 번갈아 맡으며, 작품 역시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결과 매우 치밀하고 지적인 재해석이 탄생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정통한 예술가들만이 지닐 수 있는 원작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작품 전반에 깃들어 있다.


촘촘하게 엮어낸 강렬한 대사들은 관객을 사로잡아 연극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햄릿의 내면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또한 2026년 현재, 이 작품은 애도와 정신 건강, 남성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내며 더욱 강한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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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독백인 “사느냐 죽느냐”로 공연의 막을 올리려면 상당한 역량이 필요하다. 내가 관람한 날 햄릿을 연기한 잭 트웰브트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으며 단숨에 관객을 사로잡는다. 올드 피츠의 친밀한 공간 덕분에 트웰브트리는 섬세한 뉘앙스까지 살려 대사를 구사하며, 정확한 발음으로 단 한 음절도 놓치지 않고 관객에게 전달한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장악하는 뛰어난 표현력을 바탕으로, 그는 극적인 침묵을 적절히 활용해 텍스트에 뚜렷이 현대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때로 그의 연기에서는 의도적으로 계산된 듯한 연극적 과장이 느껴지는데, 이는 햄릿이 스스로 연출하는 기이하고 광기 어린 태도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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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와 현대극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탁월한 연기를 보여주는 젊은 배우는 흔치 않다. 라즈 라바데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지난해 말, 그는 벨부아에서 이몬 플랙이 연출한 King Lear에서 사생아인 에드먼드라는 인물에 새로운 깊이를 더했으며, 자신의 혼혈 정체성에서 비롯된 독특하고 진정성 있는 시각을 역할에 녹여냈다. 이어 호주 창작 뮤지컬 My Brilliant Career에서는 연기와 노래는 물론 여러 악기까지 직접 연주하며 전국의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번 작품에서 햄릿이 처음 호레이쇼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라바데는 첫 대사인 “그의 일부가 여기 있소”에 여러 감정이 겹쳐진 깊이를 불어넣는다. 이 순간 두 주연 사이의 깊고도 매력적인 호흡이 단번에 자리 잡으며, 이후 공연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라바데는 여러 단역을 오가며 반가운 코믹한 활력을 더하는 한편, 호레이쇼 역에서는 폭넓고 깊이 있는 감정 표현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의 연기는 다른 날 다시 극장을 찾아, 이번에는 햄릿으로서 관객을 향한 독백을 어떻게 풀어낼지 보고 싶게 만들 만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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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의 연기를 뒷받침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베리티 햄슨의 조명이다. 영화의 클로즈업을 연상시키는 집중력과 강렬한 연극성을 결합해 두 배우의 연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호주 창작자들의 꾸밈없는 태도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호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조명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햄슨은 단순히 무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진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조명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의 조명은 만화경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햄릿의 내면을 능숙하게 확대해 보여주며, 깊은 사색에서 짙은 슬픔으로, 진솔하고 뭉클한 순간에서 순수한 광기로 거침없이 이동한다. 배우와 조명이 만들어내는 이 긴밀한 협업은 그 자체로 관객을 완전히 매료시킨다.


키르티 수브라마냠의 무대 디자인은 제한된 공간을 한 치의 낭비도 없이 활용해, 이야기 자체의 혼란스러운 양상과 달리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햄릿의 미로 같은 내면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특히 무덤 파는 자의 장면은 그 자체로 작지만 인상적인 연극적 성취다. 진정으로 위대한 연극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시각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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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스위트 프린스》는 집단적 창의성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자, 호주 연극만의 특별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다. 연기와 디자인 모두에서 하나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작품의 구조를 생각하면 관객에게 완전한 감정적 몰입을 요구하는 공연도 아니고, 애초에 그런 몰입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는지는 부정하기 어렵다.


새롭게 쓰인 애절한 결말과 함께 막이 내릴 때, 이 《햄릿》이 담아내는 것은 균열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느끼는 환멸만이 아니다. 한 공간에 모인 이토록 풍부한 예술성과 확고한 신념을 보고 있으면, 예술과 예술 공동체의 불확실한 미래를 둘러싼 우리의 좌절과 불안까지도 이 작품을 통해 함께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시대를 초월한 작품을 통해 다시 던져지는 이 질문 역시 시대를 초월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대 위에 구현해내는 극단의 뛰어난 역량을 마주하면 바로 그 미래가 놀라울 만큼 밝게 느껴진다.



공연 사진 ©캠벨 파슨스


Desmond Chew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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