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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시대에서의 예술과 인간성을 묻다 -연극 <타인의 삶> 리뷰

Jiwon Chun

Jiwon Chun

2026. 08. 07 12:01Views 45

자기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지 않을까.


인간의 선한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연극 <타인의 삶>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독일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은 감시와 검열이 일상이었던 동독을 배경으로, 한 명의 비밀경찰이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2024년 초연부터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여러 사정이 겹쳐 결국 2026년에야 만나게 되었다.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비밀경찰 슈타지다. 탁월한 심문 실력과 흔들림 없는 정치적 신념을 가진 그는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감시는 그의 일상이자 의무이며, 타인의 삶은 기록해야 할 정보일 뿐이다.

반면 극작가 게오르크 드라이만은 동독과 서독 모두에서 인정받는 예술가다. 그는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순응하지도 않는다. 절친한 친구이자 연출가인 알베르트 예르스카가 직업 금지를 당한 이후, 그는 예술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비로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의 연인 크리스타 마리아 질란트 역시 배우라는 삶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다.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권력에 굴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배우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존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비즐러는 국가의 명령으로 이들의 집을 도청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듣게 되는 것은 국가를 위협하는 음모가 아니라, 사랑하고 예술을 만들며 서로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국가의 명령으로 타인을 감시하기 위해 시작된 도청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즐러를 예술과 인간의 삶 가장 가까이에 앉혀 놓는다.


연극 <타인의 삶> 캐스팅 보드, LG아트센터 서울U+스테이지. photo by @Zhikchok
연극 <타인의 삶> 캐스팅 보드, LG아트센터 서울U+스테이지. photo by @Zhikchok


해당 리뷰는 연극 <타인의 삶>과 관련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당 리뷰는 2026년 7월 30일 관극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감시자가 처음 들은 것은 시였다.


작품 곳곳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흔적이 스며 있다. 단순히 독일을 대표하는 동독 극작가이기 때문에 등장하는 이름이 아니다. 브레히트는 예술이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했던 작가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작품 속에서 하나의 소품이 아니라 비즐러가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 된다.


드라이만의 생일 파티에서 모두가 웃고 떠들며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가운데, 알베르트 예르스카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홀로 노란색 시집을 펼쳐 든다. 그가 읽고 있던 책은 브레히트의 시집이었고, 낭독하는 작품은 「독수리가 있었네(Es war einmal ein Adler」였다.


작품은 이 시를 친절하게 해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이 더 인상 깊었다. 직업을 박탈당해 더 이상 연출을 할 수 없게 된 예술가가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브레히트의 시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절망을 직접 말하는 대신 시를 읽는 예르스카의 모습은, 예술가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브레히트에게 시는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고, 예르스카에게도 그것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예술이었다.


연극 <타인의 삶> 공연사진,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c)projectgroup ILDA
연극 <타인의 삶> 공연사진,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c)projectgroup ILDA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비즐러의 변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도청기를 통해 드라이만과 예르스카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가장 먼저 듣게 된 것은 국가를 위협하는 음모가 아니라 한 예술가의 좌절과 신념이었다. 감시자는 보고서를 쓰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이해하게 된 것은 타인의 삶이었다.


그렇기에 이후 예르스카의 죽음은 비즐러에게도 결코 타인의 비극으로 남지 않는다. 그는 예르스카의 사건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끝내 붙들고, 그의 노란색 브레히트 시집을 읽으며 감시 대상이었던 이들의 감정에 동화되어 간다. 그리고 브레히트의 「마리 A.의 기억(Erinnerung an die Marie A.)」을 자신의 언어로 바꾸어 읊조린다. 사랑의 기억을 노래한 시가 한 예술가를 애도하는 언어가 되는 순간, 국가의 언어와 보고서만을 쓰던 비즐러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시의 언어로 표현한다. 작품 속 브레히트는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예술과 가장 거리가 멀었던 한 인간이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매개로 기능한다.




벽을 넘어 닿은 음악


연극 <타인의 삶> 공연사진,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c)projectgroup ILDA
연극 <타인의 삶> 공연사진,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c)projectgroup ILDA


비즐러의 변화는 거창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길에서 아이의 축구공을 주워 주었을 때, 아이는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저씨 슈타지죠. 아빠가 슈타지는 나쁜 사람들이랬어요. 근데 아저씨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전의 비즐러였다면 망설임 없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었을 것이다. 그것이 슈타지의 방식이었고, 그가 누구보다 익숙하게 명령받아 따르고, 해 오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축구공 이름이 뭐니?"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레히트의 시를 듣고,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들으며 마음속에 조금씩 쌓여 가던 변화가 처음 행동으로 드러난 순간. 더 이상 그는 사람을 감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비즐러는 누군가의 이름을 캐묻기보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먼저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변화를 보여주는 다른 장치는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선한 영혼을 위한 소나타'다.


"이 음악을 가슴으로 들은 사람이 과연 나쁜 사람일 수 있을까?"


이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들렸다. 드라이만을 향한 말이었지만, 정작 그 음악을 가장 절실하게 듣고 있었던 사람은 벽 너머의 비즐러였다. 누구보다 문학과 예술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그는 도청을 통해 시를 듣고, 음악을 듣고, 연극을 듣는다. 타인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헤드폰은 어느새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은 벽을 넘어 비즐러에게까지 닿고, 그는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 간다.


예술은 그의 사상을 단번에 뒤집지 않는다. 대신 그의 인간성을 다시 일깨웠다. 드라이만을 감시하기 위해 작성되던 보고서는 어느 순간부터 드라이만을 지키기 위한 기록이 된다. 그 기록은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이름으로 쓴 하나의 연극으로 관객에게 보여진다. "혁명은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대사는 더 이상 무대 위의 대사가 아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희생을 감수하고, 모든 불이익을 감당하면서까지 자신의 양심을 선택하는 비즐러의 삶이 그 문장을 완성한다.


신이 한 일이 드라이만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기대도, 영웅이 되겠다는 의지도 없다. 오히려 그 선택으로 인해 이전의 지위와 권력, 그리고 슈타지로서의 삶을 대부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가 요구하는 충성보다 자신의 신념을 따른다. 작품은 비즐러를 거대한 혁명가로 그리지 않는다. 다만 타인의 삶을 이해한 끝에, 마침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한 사람으로 남겨 둔다.





기록이 무대 위에 떨어지는 순간


연극이라는 매체가 가진 힘 역시 컸다. 회색빛 무대와 최소한의 의자만으로 감시 사회의 삭막함을 표현하면서도, 곳곳에 배치된 유머는 이 작품이 체제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감시 사회를 재현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그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에 시선을 머물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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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결말은 연극이라는 매체가 가진 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드라이만은 독일이 통일된 이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코드번호의 인물에게 오랫동안 보호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은 철저하게 감시당했고, 그 기록은 역겨울 만큼 집요하다. 그러나 감시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갈수록 그는 또 다른 사실을 깨닫는다. 누군가는 그 감시 안에서 자신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 장면은 영화와 연극이 가장 크게 갈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지만, 연극은 감시라는 '기록'을 무대 위에 실제로 존재하게 만든다. 전화선이 끊어지는 순간, 천장에 매달려 있던 수많은 감시 보고서가 드라이만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문서철 속 활자가 종이가 되어 배우의 몸 위로 떨어지고, 객석은 그 무게를 눈앞에서 함께 목격한다. 보이지 않던 감시는 비로소 형태를 갖고, 기록은 무대 위에서 하나의 풍경이 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종이들이 지닌 의미였다. 처음에는 한 사람을 통제하고 처벌하기 위해 작성된 국가의 기록이었지만, 마지막에는 한 사람의 삶과 예술을 지켜 낸 증언으로 바뀐다. 감시를 위해 쓰인 문장이 누군가를 살아남게 한 문장이 되고, 권력의 언어는 한 인간의 양심을 증명하는 기록으로 남는다. 이 변화는 연극이라는 매체가 가진 물질성 덕분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무대를 뒤덮는 수많은 종이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비즐러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신념의 무게이자 그가 감당했던 시간의 무게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이 책은 나를 위한 선물입니다.


짧은 한마디지만, 그 한 문장이 지금까지 무대 위를 뒤덮고 있던 모든 기록의 의미를 완성한다. 드라이만은 끝내 비즐러를 알지 못하고, 비즐러 역시 자신의 선택이 알려지리라는 기대 없이 살아간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꾸어 놓은 존재가 된다. 내가 관람한 회차에서 윤나무 배우는 이 장면을 담담하게 연기했다. 오히려 절제되어 있었기에 더 오래 남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희생을 감수했고, 그 대가로 이전의 삶을 잃었을지라도, 그의 선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단 한 권의 책이 증명해 준다.




연극 <타인의 삶>은 9월 13일 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


Jiwon Chun

감시 시대에서의 예술과 인간성을 묻다 -연극 <타인의 삶> 리뷰 | IT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