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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며 1930년 경성 속으로,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

Sangha Park

Sangha Park

2026. 08. 04 17:53Views 4

“아, 재밌다.” 공연장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관객이 직접 걷고, 마시고, 먹으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이머시브 연극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 후기이다.


공연 기간: 2026년 7월 25일(토) ~ 2026년 8월 9일(일)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관람 시간: 약 180분 (인터미션 15분 포함, 현장 진행에 따라 변동 가능)

관람 등급: 13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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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은 <금란방>으로 실험적인 공간 연출을 선보였던 김태형 연출과 박해림 작가가 다시 만난 이머시브 연극으로, 두산아트센터와 돌곶이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1930년 경성, 관객들이 하객으로 앉은 화려한 결혼식 도중 울린 총성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누구인가. 관객은 도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모던보이 ‘정해운’의 시선을 따라 여러 인물과 공간을 오가며, 달콤한 디저트와 씁쓸한 커피, 그리고 막걸리와 소소한 간식거리들 사이에 숨겨진 진실에 조금씩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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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르는 게 아니라, 골라지는 이야기

이렇게 많은 갈래의 이야기가 있는 이머시브극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이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 아니었다는 점이 재밌었다. 어느 갈림길에서는 배우가 자신과 함께할 관객을 구하기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배우가 특정 관객을 지목하거나 동선 상 가까운 관객들의 이동을 유도하면서 사실상 ‘선택당하는’ 구조였다. 관객의 의지 반, 극의 설계 반으로 다음 장면이 정해지는 셈이다. 

이 지점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동시에 다가왔다.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는 전개 덕분에 매 순간 다음이 궁금해지고, 내가 따라가지 못한 캐릭터는 지금쯤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은 분명한 매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사가 궁금한, 내 마음에 둔 인물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여러 번 다시 봐도 모든 서사를 다 확인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이 작품은 관객의 의도만으로는 완주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고 느꼈다. 다만 나는 한 회차만 관람했기 때문에 매번 선택 당하는 관객의 위치가 같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장면 구성 상 다회차 관람객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원하는 경로를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눠 먹는 이야기, 그러나 공평하지는 않았던 식탁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은 먹는 행위를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활용한다. 카페 ‘아카시’에서 제공되는 크렘브륄레와 커피처럼 전체 관객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간식도 있지만, 갈라진 동선에 따라 만두나 아이스크림, 주먹밥 같은 것을 받는 관객도 있었다. 문제는 이게 정말 갈림길에 따라 갈리다 보니, 나처럼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만 맛보고 끝나는 경우도 생긴다는 점이다. 맛은 하나같이 좋았지만, 양도 적고 종류도 제한적이라 ‘내가 놓친 메뉴’에 대한 아쉬움이 꽤 오래 남았다. 미식이라는 제목값을 하려면, 조금 더 많은 관객이 다양한 메뉴를 경험할 수 있는 구조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메모는 했지만, 퍼즐을 맞출 기회는 없었다

공연 초반, 연필을 주기도 했고, 특정 공간에 들어간 관객들이 표시되기도, 몇명만이 스티커를 부착받거나 쪽지를 받기도 했다. 마치 직접 단서를 모으고 추리해나가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객이 조각난 단서를 모아 스스로 진실에 다다르기보다는, 어느 순간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통째로 던져주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머시브극이라는 형식을 생각하면, 관객이 직접 발로 뛰며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조금 더 살아있었다면 훨씬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간을 위한 공간이 되어버린 순간들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아쉬웠던 지점은 ‘공간’이었다. 극장 곳곳을 무대로 활용한다는 이머시브극 특유의 매력은 분명했지만, 매표소나 극장 외부처럼 두산아트센터의 다른 일반 이용객들이 그대로 오가는 공간에서 극이 진행되다 보니 배우들의 열연에 감탄하다가도 순간순간 몰입이 깨지곤 했다. 극 중 인물이 아닌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걸 보는 순간, 혹은 다른 배우가 다른 장소를 표현하는 장면을 같은 공간에서 표현하는 순간 모두가 몰입에서 잠깐 벗어나 머쓱해지는 순간이랄까.. 반대로 평소라면 들어가 볼 수 없는 백스테이지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특별한 몰입감을 줬다. 그래서 더더욱, 공간을 좀 더 다양하게, 중복 없이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방음 문제도 눈에 띄었다. 공간을 나누는 칸막이가 완전히 밀폐되어 있지 않다 보니, 옆 공간의 대사나 효과음이 그대로 들려오는 경우가 잦았다. 한 공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도 다른 장면의 소리가 섞여 들어오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러한 부분들은 공간 상의 한계로 어쩔 수 없다고 느껴지긴 했기에, 더 적절한 공연장에서 다시 공연할 수 있게 된다면 개선되리라 기대해본다.


예상 가능한 전개, 그럼에도 남는 신선함

스토리 전개 자체는 큰 틀에서 보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편이었다. 반전의 충격보다는, 각 인물의 사연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 자체에 무게가 실려 있는 구조에 가깝다. 다만 제목과 주제의식, 그리고 관객의 참여 방식이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을 흥미롭게 만들었다. 먹고 마시는 행위가 곧 인물의 서사와 감정을 잇는 장치로 기능하고, 관객의 선택(혹은 선택당함)으로써 극의 일부가 되는 감각은 다른 형식의 연극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지점이었다.

이런저런 아쉬움을 늘어놓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순수하게 재밌었다. 관객이라는 자의식을 내려놓고 한 시대, 한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시간이었다. 정해진 객석에서 관망하는 연극에 익숙했다면, 이 공연은 분명 낯설고 조금은 부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낯섦과 예측 불가능함 자체가 이 작품의 가장 큰 재미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굽 낮은 신발을 신고 편한 옷을 챙겨 입고, 경성의 어느 결혼식장 문을 직접 열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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