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야기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감상을 얻게 된다. 또한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떤 형식으로 만나는지에 따라 작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스페인 극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2023년 초연으로 공개된 후 호평을 받으며, 2025-26년 재연까지 이어진 이 작품은 원작의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음악과 각색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선보였다. 이번 글에서는 원작 희곡과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를 비교하며 각색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까를로스와 이그나시오
원작의 주인공은 돈 파블로 맹인학교에 전학 온 이그나시오이다. 학교의 학생들은 자신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이그나시오는 자신의 장애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학교의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학교에서의 행복은 결국 위선과 거짓일 뿐이라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은 우리에게 멀리 있는 사물들을 감지하는 능력을 주지 않아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우리는 항상 밖에 사는 저들 밑에 있지. 우리 부모님들 시대에 길목에서 동냥을 하며 맹인들이 부르던 노래 「시력만한 복은 없다네」는 너희들의 느긋한 학교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 그러나 나는 그 노래가 훨씬 더 진실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하고는 달랐거든.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이러한 이그나시오의 말은 학생들의 신념을 흔들고, 자유롭고 평화로웠던 돈 파블로 학교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으로 남지 않게 된다. 원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그나시오의 사상이다. 그는 맹인학교 학생들이 만들어 낸 평화로운 세계를 '위선'과 '거짓'이라고 규정하며,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태도를 끊임없이 비판한다. 작품 곳곳에는 이그나시오의 긴 대사와 논리가 중심이며, 그의 철학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면 뮤지컬은 이그나시오의 사상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그것에 맞서는 까를로스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학교의 질서를 지키고 '철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인 까를로스는 처음에는 누구보다 단호하게 이그나시오와 대립한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점차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신념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뮤지컬은 이러한 내적 갈등과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각색은 작품의 질문을 더욱 확장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안정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또한 자신을 둘러싼 체제와 규범을 의심하고 그 안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어느 한쪽의 답을 제시하기보다 두 사상을 팽팽하게 충돌시키며, 관객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고민하도록 만든다.
미겔린과 까를로스
극은 방학 동안 학교 밖을 경험하고 온 인물을 기다리며 시작된다. 희곡에서는 미겔린이 학교로 돌아오며 시작된다. 그는 학교 밖 세상을 직접 마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그나시오의 현실 인식에 가장 먼저 공감하고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설정은 미겔린이 이그나시오에게 감화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한다.반면 뮤지컬에서는 이 설정이 까를로스에게로 옮겨진다. 학교의 질서를 지키며 이그나시오와 가장 강하게 대립하는 인물이 바로 학교 밖 세상을 경험한 인물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변화다. 이는 까를로스가 단순히 이그나시오의 말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학교 밖 현실을 경험하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이 이그나시오를 통해 표면으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각색은 까를로스의 내적 갈등과 변화에 더욱 강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까를로스의 변화가 갑작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동시에, 작품 후반부 두 사상의 충돌과 그의 선택에 더욱 큰 무게를 실어준다고 볼 수 있다.
후아나와 이그나시오
내가 필요한 것은 온몸으로 말하는 '너를 사랑해'야. '너의 슬픔과 고뇌까지 포함해서 너를 사랑해. 허황한 즐거움의 왕국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너와 함께 괴로움을 같이하기 위해서.'
학교를 떠나려는 이그나시오를 붙잡으며 원작의 후아나는 "너에게 필요한 것은 애인이다."라고 말한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이를 "너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다."로 각색했다. 이러한 각색은 원작이 가진 시대적 한계를 완화하는 역할도 한다. '애인'이라는 표현 대신 '진정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로 의미를 확장함으로써, 작품은 특정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 인간애와 이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는 원작의 핵심 메시지는 유지하면서도 현대의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도냐 페피따와 돈 파블로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돈 파블로의 부재이다. 원작에서는 학교의 설립자인 돈 파블로와 도냐 페피따가 함께 등장하지만, 뮤지컬에서는 돈 파블로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 그의 역할을 도냐 페피따가 대신한다. 이러한 부분은 단순히 등장인물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로도 읽혔다. 극 중 학교는 '철의 정신' 아래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을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한다. 그러나 정작 학교를 운영하고 대표하는 역할은 유일하게 시력을 가진 도냐 페피따가 수행한다. 이는 학생들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체제와 실제 운영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뮤지컬은 이 설정을 통해 철의 정신이 내세우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 그리고 체제가 가진 불완전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뮤지컬의 힘, 음악
희곡이 인물들의 대사와 독백을 통해 사상을 전달한다면, 뮤지컬은 음악과 안무를 더해 그 메시지를 더욱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특히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지팡는 단순한 소품을 넘어 사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극 초반, 지팡이는 오직 이그나시오만이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하나둘 지팡이를 들기 시작하면서, 지팡이는 더 이상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이그나시오의 사상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변화한다. 이후 학생들이 지팡이를 활용해 군무를 펼치거나, 까를로스를 둘러싸며 압박하는 장면은 희곡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과 시각적인 충격을 만들어낸다.
넘버와 군무 역시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대표적으로 '철의 정신'은 돈 파블로 학교가 추구하는 이념을 하나의 집단적 목소리로 형상화한다. 학생들이 같은 동작과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장면은 학교가 강조하는 질서와 규율,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희곡에서 인물들의 대사로 전달되던 이념을 관객이 직접 보고, 듣고, 체감하게 만들며, 체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원작을 알고 뮤지컬을 보면 익숙했던 장면 하나, 대사 한 줄, 인물의 작은 변화에도 각색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희곡을 그대로 옮긴 작품이 아니라, 원작이 던진 질문을 오늘의 무대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 작품이다. 그렇기에 희곡과 뮤지컬을 함께 마주하는 경험은 어느 한 작품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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