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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2026 -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 아비뇽을 물들인 한국어의 울림

Yunyoung Heo

Yunyoung Heo

2026. 08. 04 17:49Views 2

프랑스 남부의 작고 아름다운 역사 도시 아비뇽이 매년 여름이면 세계 연극과 공연예술의 거대한 용광로로 변모한다.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최정상 공연예술 축제로 꼽히는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이 2026년 제80회라는 뜻깊은 이정표를 맞이했다. 특히 2026년 축제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과 페스티벌 80주년이 교차하는 해로, 아시아 언어로는 최초이자 세계에서 네 번째로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langue invitée)로 선정하여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영어와 스페인어, 아랍어의 뒤를 이어 축제의 메인 언어로 선포된 한국어는 7월 4일부터 25일까지 약 3주간 아비뇽의 고성 및 역사적 무대 곳곳에서 울려 퍼지며 K-공연예술의 무한한 예술적 깊이를 세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아비뇽 페스티벌의 기원은 1947년 연출가이자 배우였던 장 빌라르(Jean Vilar)의 도전에서 출발한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교황청 궁전(Palais des Papes) 안뜰에서 현대 미술 전시와 연극을 결합해 선보인 한 번의 시도가 오늘날 글로벌 공연예술을 이끄는 축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비뇽 축제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운영된다. 축제의 디렉터와 예술감독이 직접 기획 및 초청 작품을 엄선하여 교황청 명예의 뜰(Cour d'honneur) 등 주요 유적지에서 선보이는 공식 프로그램 ‘In 페스티벌’과, 전 세계 수많은 독립 극단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해 시내의 소극장과 거리를 활기로 채우는 ‘Off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축제 포스터에 자주 등장하는 세 개의 열쇠 상징은 아비뇽 시의 상징에서 따온 것으로, 각각 천국과 지옥, 그리고 도시 자체를 뜻하며 아비뇽이라는 도시 전체가 곧 하나의 커다란 극장임을 말해준다.

이번 2026년 축제에서 한국어가 공식 초청 언어로 지정된 것은 대중문화를 넘어 순수 공연예술 영역에서 한국어가 가진 독보적인 음율과 무대 언어로서의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결과다. 티아고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언어에서 벗어나, 고유한 지역과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무대 위에서 강렬한 표현력을 발휘하는 언어를 초청하고자 한국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축제에서는 총 47편의 전체 In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 가운데 무려 9편의 한국 작품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1998년 이후 28년 만에 한국 작품이 공식 초청 무대에 대거 오른 성과이자 한국 공연예술사의 독보적인 기록이다.

2026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국 작품들은 총 2만 1천여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대부분의 회차가 전석 매진되는 놀라운 흥행과 찬사를 기록했다. 가장 독보적인 주목을 받은 작품은 교황청 명예의 뜰에서 펼쳐진 낭독 공연 ‘새(Oiseau)’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이 공연에는 한국의 대배우 이혜영과 프랑스의 대표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함께 무대에 올라 제주 4·3의 비극과 인간애를 울림 있게 전달했다. 공연 막바지에는 원작자인 한강 작가가 직접 무대에 올라 낭독을 이어갔으며, 현장을 채운 2천여 명의 관객들은 순식간에 매료되어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다.

문학뿐만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한국 예술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아비뇽을 사로잡았다. 소리꾼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눈, 눈, 눈’은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을 판소리로 완벽하게 재해석해 현지 주요 언론인 텔레라마 등으로부터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킨 최우수 발견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또한, 폭염 속 기후 위기를 신체극으로 표현한 허성임 안무가의 ‘1도씨’는 압도적인 에너지로 인간이 만든 재앙을 성찰하게 했으며, 연극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입센상 수상자 구자하 작가는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로 구성된 3부작을 선보이고 한식 체험을 더해 독창적인 예술 경험을 선사했다. 더불어 제주 해녀의 삶과 역사적 아픔을 다룬 이경성의 ‘섬 이야기’와 이진엽의 ‘물질’, 전통 연희를 현대적으로 해체한 리퀴드사운드의 ‘긴:연희해체프로젝트Ⅰ’ 역시 매진 행렬을 이루며 한국 공연 예술의 깊이를 증명했다.


섬 이야기, ©아비뇽 페스티벌
섬 이야기, ©아비뇽 페스티벌
물질, ©아비뇽 페스티벌
물질, ©아비뇽 페스티벌
하리보 김치, ©아비뇽 페스티벌
하리보 김치, ©아비뇽 페스티벌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은 단순히 한국 작품을 일회성으로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한국 공연예술이 세계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지속 진출할 수 있는 단단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를 비롯한 양국의 문화 기관들은 축제 기간 중 국제 네트워킹 행사를 개최하여 글로벌 유통망과 협력 관계를 긴밀히 논의했다. 티아고 호드리게스 예술감독은 이번 한국어 초청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협력의 시작이라고 선언했으며, 세계 예술계의 중심에서 확인된 한국어의 서사와 연극적 울림은 향후 K-공연예술이 글로벌 무대에서 펼쳐나갈 새로운 황금기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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