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을 다시 만나다
2024년, 뮤지컬 〈더 라스트맨〉 재연을 관극했다. 김지온 생존자와 홍나현 생존자를 보았고, 당시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작품이다. 동시에 1인극이라는 형식을 처음 접하게 해준 작품이었고, 배우마다 생존자의 전사와 감정선이 달라지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2026년에는 삼연이 링크더스페이스 1관에서 1차와 2차 시즌으로 공연되었다. 재연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두 생존자는 각각 1차와 2차 캐스팅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재연과 삼연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차) 2026.03.24 ~ 2026.06.07
(2차) 2026.06.09 ~ 2026.08.09
장소: 링크더스페이스 1관
극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극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어떤 작품인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더 라스트맨〉은 좀비 아포칼립스 속 방공호에서 살아가는 한 생존자의 이야기다. 생존자는 1년 후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방공호 문을 닫는다. 이후 다른 생존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를 구하고 싶어 한다. 휴대폰을 통해 지속적으로 방송을 송출하며,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건넨다. 이 송출 영상은 실제 B-103 유튜브 채널에도 업로드된다. 그러나 후반부 인구주택총조사원과 집주인의 등장으로 관객은 진실을 알게 된다. 사실 좀비 아포칼립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연 속에서 흐른 365일 역시 극중의 시간이며, 공연마다 삽입되는 당일 뉴스는 현실과 극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든다.
무엇이 생존자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키고, 스스로 두꺼운 문을 가진 방공호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석은 배우마다 다르다. 김지온 배우의 생존자는 욕설과 폭언을 견뎌 온 기간제 교사이고, 홍나현 배우의 생존자는 고등학교 3학년이자 자립준비청년이다. 전사와 설정은 다르지만 작품이 전달하는 감정은 결코 특수하지 않다. 사회를 살아가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존자의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결국 이 뮤지컬 이 제시하는 메세지는 버티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와 격려다.
재연과 삼연의 가장 큰 차이 '에러 씬'
재연과 삼연을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른바 ‘에러 씬’이다. 삼연에서는 마지막 넘버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직전, 화면을 통해 다른 생존자의 송출 영상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공연들에서 직전 공연의 생존자가 등장했고, 1차 마지막 공연에서는 모든 캐스팅의 영상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연출이 추가되면서 뮤지컬의 중심 키워드도 달라졌다고 느꼈다. 재연이 생존자의 선택과 결말을 끝까지 관객의 해석에 맡겼다면, 삼연은 다른 생존자들과의 ‘연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문’이다. 공연 시작, 'Go into the Bunker' 넘버와 함께 생존자는 방공호 문을 닫으며 들어간다. 초반 'The Door 1' 넘버에서는 문의 두께를 밀리미터의 단위로 소개하지만, 후반부에서 리프라이즈 되는 'The Door 2' 넘버에서는 미터로 단위가 변화한다. 이 문은 단순한 방공호의 출입문이 아니라, 사회와 생존자를 가르는 마음의 문이다.
재연에서는 문을 열 수 있을지, 다른 생존자가 실제 존재하는지 모두 관객의 해석으로 남겨두었다. 반면 삼연에서는 다른 생존자의 존재가 ‘에러 씬’을 통해 제시되며, 생존자가 그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의지가 훨씬 분명해졌다. 그래서 삼연은 재연보다 ‘혼자가 아니다’라는 극 자체의 메시지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한다고 느꼈다.
B-103 방공호 그리고 103호
무대 공간의 변화 역시 인상적이었다. 재연의 무대는 제목 그대로 ‘방공호’의 이미지가 강했다. 반면 삼연에서는 이 공간이 실제로는 ‘반지하 원룸’이라는 설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재연 무대에 익숙했던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작품의 반전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무대의 인물을 오히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수해 장면과 공간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변화는 수해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물에 잠기며 방공호는 생존자가 더욱 버티기 어려운 곳이 되기 때문이다.
재연에서는 천장에 매달려 있던 의자가 내려오면서 공간이 점점 좁아진다. 방공호 자체가 생존자를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반면 삼연에서는 번개를 연상시키는 조명과 천장의 파이프를 드러내는 연출을 사용한다. 방공호를 둘러싸고 있던 물리적인 외벽의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이 변화는 뮤지컬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에도 영향을 주었다. 재연이 물리적으로 갇혀 있다는 감각을 강조했다면, 삼연은 애초에 중요한 것은 문을 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생존자의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생존자를 가두는 것은 두꺼운 방공호의 문이 아니라, 세상에서 고립되었다고 믿는 마음이다. 문은 더 이상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애초에 실체보다 인식 속에서 더 크게 존재하는 상징이 된다.
재연과 삼연에 모두 참여한 배우들의 해석 변화
무대의 큰 틀은 유지되었다. 불안정한 심리를 상징하는 기울어진 바닥도, 무의식을 표상하는 단 아래 공간도 그대로였다. 홍나현 배우의 생존자가 공연 내내 ‘단’을 언급하는 디테일은 이러한 무대 연출을 가장 잘 활용한 예라고 느꼈다. 연출의 핵심을 정확히 짚으면서도 자립이라는 자신의 전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해석 역시 재연과 삼연을 거치며 더욱 정돈되었다. 감정선은 자연스러워졌고, 전사도 훨씬 이해하기 쉬워졌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변화는 김지온 배우의 생존자가 마지막 넘버 직전 방을 정리하는 행동이었다. 사회로 나가기 전 자신의 공간을 정돈하는 모습처럼 보여 마지막 선택에 더욱 설득력을 더했다. 홍나현 배우의 생존자는 변화가 더욱 많았다. 방공호를 소개하며 공기 정화 장치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스스로를 안아주는 동작이 추가되었는데,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생존자가 얼마나 자신을 지켜내려 애쓰고 있는지가 더욱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개인적 해석 및 바라는 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위로하는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024년의 홍나현 생존자는 자립을 준비하며 세상이 너무 낯설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버킷리스트로는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제시된다.반면 삼연에서는 '대학 과잠'이라는 소품이 새롭게 등장했다. 방공호에 들어올 때는 문제집과 연필, 교복으로 자신을 보호하던 인물이, 문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하는 순간에는 '과잠'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이 변화는 단순한 소품 추가보다는, 재연 이후의 시간을 살아낸 생존자를 연상하게 했다. 메타적으로도 공연 기간 동안 방공호에 머물던 생존자는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간다.
2024년 5월 24일 재연 마지막 공연에서 홍나현 배우의 생존자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장면처럼, 관객 역시 과거의 자신이 버텨낸 시간을 떠올리며 응원을 얻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에러 씬'에서 현재의 생존자가 아니라 과거의 생존자의 송출 영상이 등장하는 연출도 언젠가 보고 싶다는 희망이다.
마무리하며
〈더 라스트맨〉은 하나의 해석으로 끝나는 뮤지컬이 아니기에 더욱 흥미로웠고 두 시즌 다 여러 번 관극하게 되었다. 어떠한 관점에서는 내가 생존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좀비가 되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는 자신의 삶을 버텨내는 생존자들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2026년 5월 8일부터 6월 6일까지의 영국 런던 초연과 같은 해외 시장 진출도 이 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재연과 삼연을 비교하며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물리적인 고립에서 정서적인 고립으로, 그리고 개인의 생존에서 생존자들의 연대로 작품의 중심축이 조금씩 이동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글은 일부 회차만을 바탕으로 작성한 개인적인 감상이다. 같음 뮤지컬을 본 다른 관객이라면 또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뮤지컬을 개인적으로 애정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