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는 너무나 유명한 고전 그리스 비극 희곡 작품이다.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세종대학교 두 대학의 입시 지정 희곡으로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명배우들의 열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인지, 실제로 예고나 예대 학생들의 단체 관람도 많았다.
극을 보기 전, 이미 널리 알려진 이 거대한 고전을 '과연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기존과 무엇이 크게 달라졌을까' 하는 호기심을 품고 극장에 들어섰다.
포스터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번 프로덕션에서 '삼거리'는 극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다. 극 초반, 포스터 이미지와 동일한 조명이 무대를 비춘 뒤 코러스장이 등장해 운명의 세 갈래를 알리며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층 중앙 객석에서 관람한 덕분에 조명과 무대 연출이 한눈에 들어와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수월했다. 세종 M씨어터는 1층 객석의 단차가 크지 않아 시야 방해가 다소 있는 반면, 2층 객석은 단차가 좋아 몰입에 유리한 편이다.
대학 시절 교양 수업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배운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 어렴풋하게 남은 기억은 '저주받은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며, 이에 죄책감을 느껴 스스로 눈을 찌른다'는 정도였다. 이번 무대는 오이디푸스 왕의 생애를 좀 더 촘촘히 다루며, 이 비극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친절하게 풀어낸다.
#코러스장
고대 그리스 연극의 형식적 장치인 '코러스장'을 충실히 구현해낸 점도 인상적이었다. 극의 전개가 다소 아리송하게 느껴질 즈음, 코러스장이 등장해 "영원히 늙지 않는 여자, 이오카스테"와 같은 대사로 극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이런 형식의 극을 오랜만에 접해 반가웠고, 때로는 경극이나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느껴져 극의 흥미를 더했다.
#미러링
가장 기억에 남는 연출은 왕과 코러스장이 거울처럼 완벽히 대칭을 이루며 움직이는 장면이다. 이때 코러스장은 오직 객석의 관객에게만 보이는 존재라는 설정이 특히 흥미로웠다.
무대를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가정하면, 왕과 코러스장이 한쪽으로, 크레온과 마을 주민들이 반대쪽으로 2:2 구도를 이루며 좌우로 흩어져 등퇴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조명 역시 이 동선에 맞춰 함께 움직이며 인물들의 운명과 갈등을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냈다.
← 왕+코러스장 ----
/ ---- 크레온+마을주민 →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을 떠올리며 관람한다면 이 작품을 더욱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사각형 프로시니엄 무대보다는, 이 극의 개성을 한층 살릴 수 있는 충무아트센터 블랙과 같은 사방이 트인 원형 극장에서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스팅
양준모(오이디푸스), 임강희(이오카스테), 이형훈(코러스장), 남명렬(코린토스 사자), 강성진(크레온), 박정자(테레시아스), 황성대(신관), 엄정욱(양치기)
이미 널리 알려진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 그리고 배우들이 익숙한 캐릭터에 새로운 해석을 덧입히는 작업 모두 상당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 역의 양준모 배우는 뮤지컬 <웃는남자>에서도 인상 깊게 본 배우다. 이번 무대에서도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열연을 펼쳤다. 관람을 고민 중이라면 양준모 배우의 회차를 적극 추천한다. 왕의 위엄과 통찰력, 백성을 헤아리는 마음, 그 사이의 번뇌까지 모두 느껴지는 그야말로 '왕' 그 자체였다. 코러스장을 맡은 이형훈 배우는 커튼콜까지 배역에 몰입해 우아한 손짓을 이어가던 연기가 특히 좋았다. 후반부 휘몰아치는 감정과 눈물을 보며 마음이 아파지는 순간이었다. 남명렬 배우는 코린토스 사자 역으로 짧은 순간마다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극 전반이 어둡고 비극적인 만큼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흐름 속에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장면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울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평소 대학로 내 중소극장 연극은 종종 보아왔지만, 이렇게 앙상블(코러스)을 동반한 대형 연극은 처음이라 다인극 특유의 에너지와 대극장 연극의 스케일을 새삼 실감했다.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폭풍처럼 몰아치는 고전 정통극을 경험하고 싶다면, 세종 M씨어터로 향해보길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공연 사진 ©수 컴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