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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의 끝에서 찾은 인간다움, 연극 타인의 삶

Chloe

Chloe

2026. 07. 23 14:31Views 383

연극 타인의 삶이 2024년 초연에 이어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2006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인의 삶은 아날로그 감성을 무대로 옮겨왔다. 차가운 냉전 시대, '인간성 회복'이라는 보편적 메시지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무대 위에 되살아났다.


공기처럼 나를 늘 보호했던 사람...연극 '타인의 삶' 리뷰 - 매일경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다, 나를 마주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동서 냉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80년대 동독. 감시와 도청이 국민의 일상을 지배하던 서늘한 시대. 비밀경찰(슈타지) 비즐러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배우 크리스티아의 집을 24시간 감시하라는 임무를 맡는다. 취조실에서는 냉혹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국가의 대변인이었던 비즐러. 하지만 매일 밤 도청기 너머로 너머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엿듣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단단하게 굳어있던 그의 신념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타인의 삶을 통제하고 기록하기 위해 시작된 도청으로, 국가라는 거대 체제에 갇혀 오랬동안 그가 잃어버렸던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연극 '타인의 삶' 비즐러 역 배우 윤나무 / 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이번 재연에서는 초연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윤나무·이동휘·정승길 배우의 재합류로 더욱 탄탄해진 호흡을 자랑한다. 배우 출신 손상규 연출가는 인물들의 시선과 동선, 섬세한 감정선을 무대 위에 촘촘히 엮어내며 원작 영화와는 또 다른 연극만의 매력을 완성했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쇼맨, 온더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윤나무 배우는 처음에는 감정을 철저히 억누른 슈타지의 건조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조금씩 인간다운 온기를 되찾아가는 변화를 섬세하게 연기했다. 여기에 예술을 향한 순수함과 시대의 비극 사이에서 갈등하는 드라이만 역의 정승길, 그리고 체제의 위엄과 인간적 균열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김수현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가 어우러져 무대 위 완벽한 합을 완성했다.


영화와는 또 다른 전율을 만드는 무대


절제된 무대와 클래식한 가구만으로도 동독 특유의 차갑고 숨 막히는 공기를 만들어낸다.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드라이만이 자신을 지켜준 비밀 수호자의 존재를 깨닫는 후반부다. 자신이 완벽하게 안전했다고 믿었던 드라이만의 머리 위로, 천장에서 수많은 도청장치와 얽히고설킨 전선들이 쏟아져 내린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전선들은 시대를 짓누르는 감시의 상징이자, 동시에 그 속에서 꺾이지 않았던 한 비즐러의 양심을 보여준다.


연극 '타인의 삶' 비즐러 역 배우 윤나무 / 사진=프로젝트그룹일다


이어서 청소부가 된 비즐러가 전선 더미 사이를 묵묵히 걸어 나오는 장면 전환은 영화의 커트를 뛰어넘는, 오직 연극이기에 가능한 연출로 깊은 잔상을 남긴다.


시대극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타인의 삶이 던지는 질문은 2026년을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타인의 삶에 쉽게 간섭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우며, 인간다운 온기를 지키고 있는가?"

감시와 통제가 당연했던 시대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순수한 인간다움의 가치를 묻는 작품, 타인의 삶9월 13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


공연 사진 © 프로젝트그룹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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