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를 가질까?
아이 한 명을 낳으면 1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시대,
지극히 사적인 이 질문에서 연극 <렁스>는 출발한다.
한 쌍의 연인이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대화로 시작한 이야기는,
그 끝에 이르러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라는 훨씬 큰 질문으로 뻗어나간다.
몸짓으로 채우는 시간
<렁스>는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그리고 한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 인류가 오래도록 품어온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좋음과 나쁨이라는 이분법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투명하게 비출 뿐이다.
2011년 미국 워싱턴 D.C.의 스튜디오 시어터에서 세계 초연된 이후, 한국에서는 연극열전이 제작하여 올해로 삼연째 무대에 오른다. 극작가 던컨 맥밀란(Duncan Macmillan)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또 다른 미니멀리즘 연극 <에브리 브릴리언트 씽>의 작가이기도 하다. 배우 한 명의 독백으로 채워지는 그 작품과 달리, <렁스>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같은 실험을 밀어붙인다. 소품도, 무대 전환도 없이 단 두 사람만으로 한 커플의 평생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통해 연극이라는 매체가 가진 본질적인 힘을 시험한다. 소품 하나 없는 무대 위에서 오직 배우들의 에너지에 의해 관객들의 시간이 흐른다. 배우의 몸짓이 곧 건너뛰기 버튼이 되어 수년의 세월을 가로지른다.
숨을 곳 없는 이 무대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숨차게 쏟아지는 두 배우의 대사뿐이다. 시계판을 닮은 원형 무대 위에 그려진 두 사람의 삶은 굴곡지다. 끊임없이 충돌하고 화해하며, 삶의 문턱을 넘나든다. 그때마다 신발을 신고 벗는다. 그렇게 벗겨진 자리에 그대로 남은 신발은 막이 내릴 때까지 무대 위에 쌓여간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몸부림
이 극단적인 절제를 통해 <렁스>는 연극이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무엇에 기대 성립하는지를 되묻는다. 오직 배우들의 에너지만으로 관객의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는 발자국들은 두 사람이 살아낸 인생의 흔적이자 동시에 인간이 지구에 남기는 발자취 그 자체가 된다.
환경과 도덕이라는 거대한 담론은 한 쌍의 연인이 겪는 사랑과 상실, 불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관객에게 가닿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설교하지 않으면서도 연극의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는 과연 좋은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거울처럼 비추며, 관객들에게 성찰을 이끌어낸다.
존재자체만으로도 지구에 부담을 지울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단순한 환경 연극에 머물지 않는 <렁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가 왜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이 되려 하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막이 내리고 무대 위 두 사람의 거친 호흡이 멈추는 순간, 비로소 관객의 깊은 숨이 시작된다.
※ 본 리뷰는 남자 역 김경남, 여자 역 신윤지 캐스트의 공연을 관람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렁스는 8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전 세계 다양한 프로덕션이 선보이는 던컨 맥밀란의 '렁스'를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