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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자. 삶과 관계의 터닝포인트 앞의 당신에게 – 연극 <렁스> 입문서

Jiwon Chun

Jiwon Chun

2026. 07. 13 16:20Views 15
연극<렁스> 포스터,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극열전
연극<렁스> 포스터,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극열전



러닝타임: 95분

기간: 2026.05.23 - 2026.08.02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출연진: 임주환, 박성훈, 김경남 / 정운선, 전소민, 신윤지




7월 8일, 연극 <렁스>를 관극했다. 방대한 분량의 대본, 남자와 여자 단 두 명의 배우, 그리고 최소한의 무대 연출. 이토록 단순한 구성의 연극이지만, 그 안에는 삶과 사랑, 관계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공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은 자신과 다른, 혹은 자신과 닮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감정에 휩쓸려가게 된다.

 

이 글은 관극 후에 읽는다면 공연이 남긴 감정과 질문을 다시 한번 환기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고, 관극 전에 읽는다면 <렁스>가 던지는 질문들을 조금 더 깊이 마주할 수 있는 입문서가 되었으면 한다.


연극 <렁스> 공연장 캐스팅보드, Photo by @Zhikchok(본인)
연극 <렁스> 공연장 캐스팅보드, Photo by @Zhikchok(본인)

 

연극 <렁스>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 이텔릭체는 대사 인용입니다.



1. 렁스: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것

 

숨 쉬어.

 

폐라는 제목의 연극. 숨을 쉬는 행위. 이 단순한 행위는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인간은 산소를 받아들이고,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가끔은 이 숨을 쉬는 행위가 쉽지 않기도 하다. 내뱉는 행위임과 동시에, 공기 중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구의 폐를 더럽히는 일이기도 하다. 숨을 쉰다는 행위는 이 연극에서 한 개인이 본인의 사회, 즉, 본인의 삶을 유지하는 일이다.

 

연극 초반부터 후반까지 여자는 무수히 많은 독백을 내뱉는다. 남자가 여자를 천둥번개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무척 날서고 직설적인 어투로 말이다. 관객이었던 나는 여자의 날선 말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었기에 어느 지점에서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듣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여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도 필터링하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실존 인물과 연극의 캐릭터성을 구분하며 다수의 인간상을 포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이를 가진다는 걱정은 아이를 낳는 것이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아이가 누구를 더 닮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등으로 표현된다. 그 무게감 자체는 결국 인물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말을 남자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들은 우생학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부모님에 대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빠르게 던져지는 많은 대사들 속에서 어느 순간 가치가 변질되는지, 대화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구분하기 힘들다.

 

그 독백들과 대화 사이에서 여자와 남자는 본인들이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어휘만으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정말 불분명한 개념이다. 관객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최소한 그들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을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연극<렁스> 공연 사진,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극열전
연극<렁스> 공연 사진,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극열전

 


2. 신발: 전환기 앞에서 던지는 질문

 

너 그거 알아? 페이크레더는 땅에서 분해되지 않는대. 결국 비닐이잖아. 동물 안 죽이려고 쓰는 건데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이건 진짜 가죽이니까 나중에는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대신 오래 신어야 돼. 편해?


이 연극은 연출이 굉장히 단순하다. 등장하는 소품도 거의 없고, 인물들의 대화와 조명을 통해 장면이 전환된다. 유일하게 꾸준히 등장하는 소품이 그들이 인생의 전환기마다 갈아 신는 신발이었다. 위는 남자가 취업을 하게 되며, 여자가 남자에게 신발을 선물하고 신발이라는 존재가 관객에게 처음 인식되는 순간의 대사다. 이후 갈아 신는 신발들은 원형 무대 위에 마치 발자취처럼 하나씩 놓인다. 이러한 첫 ’전환기‘에서의 해당 질문은 매우 의미 있었고, 두 인물이 겪고 생각하는 문제들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시켰다.

 

신발이라는 이 연극에서의 주요한 연출이자 메타포에 대해 더욱 생각해보았다. 영어에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의미로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신발이 바뀌기 이전과 이후의 인물들은 분명히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부양능력이 생긴 남자, 아이의 어머니가 될 준비를 한 여자 등과 같이 말이다. 그렇기에 앞의 질문에서 시작된 갈등은 인물들이 삶을 살아가는 내내 이어지는 갈등이다. 가치와 옳고 그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니까.

 



3. 대화: 관계는 어떻게 성숙하는가


넌 가끔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내가 네 말을 알아듣고 반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는 거야.


남자와 여자는 극 내내 결혼과 아이를 논하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다른 사람이다.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직접적인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는 일이기에, 여자는 임신을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내뱉는다. 그 많은 질문들로 숨이 찰 지경이 될 정도로 말이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준다.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남자에게 신체적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일정 수준 이상 관여할 수 없으며 여자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네가 믿는 것만큼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고 두려워한다. 여자가 잠든 사이 이어졌던 위의 독백은 남자가 이 연극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꺼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남자의 솔직한 생각 고백을 통해, 남자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관객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여자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가만히 있듯 이 관계는 그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해 불안정하다. 그 관계의 터닝포인트에서, 여자와 남자가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남자는 여자가 이겨내고 돌아와 자신을 다시 봐주었으면 했고,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버텨주었으면 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들은 어쩌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최악의 모습으로 서로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연극<렁스> 공연 사진,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극열전
연극<렁스> 공연 사진,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극열전



4. 나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자

 

나 이제 네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뭔지 정확히 알겠어.


우리 나무를 심자. 네가 그랬잖아.

 

여자와 남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 남자는 비로소 여자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 여자 역시 수많은 불안과 질문을 지나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결국 <렁스>가 보여주는 것은 사랑이 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삶을 통과하며 조금씩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말한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된 뒤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동안 끊임없이 성장한다고. 서로를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관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그렇게 남자와 여자의 발걸음은 원형의 무대를 따라 인생을 그린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자.

 

 

연극 <렁스> 공연장 로비. Photo by @Zhikchok(본인)
연극 <렁스> 공연장 로비. Photo by @Zhikchok(본인)

 

 

개인적으로는 20대 후반 이후에 이 연극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인 현재, 여자와 남자의 대화가 현실적이고 불편하다는 것은 아직은 지레짐작으로만 공감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대한 관점도, 타인과 연인,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감정도 넓어질 것이다. 그때 다시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와닿지 않을까 싶다.

 

현재 연극 <렁스>는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8월 2일까지 공연된다.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극의 호흡 속으로 들어가, 삶과 사랑, 그리고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함께 마주해 보길 바란다.



어쨌든, 사랑해!

 

 


Jiwon 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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