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미국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공연 시장을 대표하는 공연 중심지다. 수십 개의 극장에서 뮤지컬과 연극이 매일 공연되며, 오랜 고전부터 새로운 창작 작품까지 다양한 레퍼토리가 공존한다. 최근 웨스트엔드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기존 작품을 시대에 맞게 새롭게 연출하거나, 젊은 관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대 기술과 참여형 연출을 적극 활용하는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공연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로 만드는 분위기 역시 웨스트엔드의 중요한 매력이다.
이번 런던 여행에서 여러 공연을 관람하며 가장 먼저 놀랐던 것은 극장 안에서도 자유롭게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물을 마시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지만, 웨스트엔드 극장에는 대부분 바(Bar)가 마련되어 있었다. 공연 시작 전이나 인터미션에는 와인, 맥주, 칵테일 같은 주류는 물론 프링글스, 초콜릿, 스키틀즈, 아이스크림 등 간단한 간식을 판매했고, 이를 객석으로 가져가 공연을 보며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스키틀즈를 구매했을 때는 공연 중 봉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사탕을 미리 플라스틱 컵에 옮겨 담을 수 있게 준비해 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관객의 편의와 동시에 다른 관객에 대한 배려까지 고려한 작은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즐기는 방식에서도 한국과는 다른 문화가 느껴졌다. 넘버 하나가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자연스럽게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고, 인상적인 고음이나 어려운 장면이 끝나면 휘슬 소리까지 이어졌다. 배우들 역시 이러한 반응을 즐기는 듯했고, 객석과 무대가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간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국 관객들도 열정적이지만, 작품이 끝난 뒤에야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웨스트엔드에서는 공연 중에도 아낌없이 감탄과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커튼콜 문화 역시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공연은 커튼콜 촬영이 허용되지만, 실제로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많은 관객들은 촬영보다 배우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고 환호하는 데 집중했다. 한국에서는 커튼콜 촬영이 가능한 날이면 객석이 휴대전화 화면으로 가득 차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웨스트엔드에서는 눈으로 마지막 순간을 직접 담으려는 관객이 더 많다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오페라의 유령> 공연이 끝난 뒤였다. 객석 조명이 켜지고 대부분의 공연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오케스트라는 계속 연주를 이어 갔다. 무대 앞 오케스트라 피트가 잘 보이는 2층 객석에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연주를 감상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고, 마지막 음이 끝나자 배우들에게 보냈던 것만큼 큰 박수가 오케스트라를 향해 쏟아졌다. 배우뿐 아니라 공연을 완성한 모든 예술가에게 존경을 보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웨스트엔드는 단순히 수준 높은 공연만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었다. 관객이 공연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배우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함께 공연을 보는 다른 관객까지 존중하는 문화가 오랜 시간 쌓여 오늘날의 공연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의 태도까지 더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사실을, 런던의 극장에서 직접 체감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