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셰익스피어 글로브에서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을 관람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극장에서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했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그 이상의 감동이 남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극장 자체였다. 천장이 뚫린 야외 공연장에서는 여름밤의 공기와 함께 극이 흘러갔다. 배우들은 마이크 하나 없이 오직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객석을 압도했고, 2층 발코니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역시 공간 전체를 자연스럽게 채웠다. 수백 년 전 관객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공연을 즐겼을 것이라 생각하니, 공연을 본다기보다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글로브 극장의 백미는 단연 스탠딩 객석이었다. 무대 바로 앞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과 배우들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 배우들은 끊임없이 관객과 눈을 맞추고 말을 걸었으며, 극 중으로 직접 끌어들이기도 했다. 퍽이 관객 한 명에게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객석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고, 관객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즉석 오디션을 보거나 배우들의 연기를 돕는 순간에는 공연과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졌다. 관객은 단순히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극을 함께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되었다.
작품의 내용 역시 이러한 연출과 놀라울 만큼 잘 어울렸다. <한여름 밤의 꿈>은 숲속에서 벌어지는 마법과 착각, 뒤바뀐 사랑을 통해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충동적이고 우스꽝스러운지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사랑에 빠지는 대상이 한순간에 바뀌고, 질투와 오해가 반복되는 과정은 과장된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랑도 인간도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우들은 과감한 신체 코미디와 빠른 템포의 대사, 능청스러운 애드리브를 더해 400년이 넘은 희곡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웃음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공연을 본 날이 실제 여름밤이었다는 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밤하늘 아래에서 펼쳐지는 숲의 마법은 무대장치보다도 실제 계절과 공기가 완성해 주는 연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수많은 비눗방울을 날리며 공연이 끝났을 때는 정말 한 편의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글로브의 <한여름 밤의 꿈>은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재현하는 공연이 아니었다. 배우와 관객,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공간에서 뒤섞이며 살아 움직이는 축제였다. 셰익스피어가 희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웃음과 해방감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직접 확인한, 잊지 못할 여름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