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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배우, 무한한 세계: 1인극의 매력 속으로

Dayoung

Dayoung

2026. 06. 29 21:34Views 18

배우가 아닌 안내자


단 한 사람을 프리즘 삼아 건너온, 거대한 이야기를 목격한 적이 있는가?

한 배우는 여러 인물이 되고, 하나의 몸은 여러 시간과 공간을 품는다. 1인극 속의 배우는 때로 서술자가 되고, 때로는 너이자 나 그리고 우리가 된다.


1인극은 배우에게 가장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형식이다.

상대 배우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퇴장해서 쉴 수 있는 장면도 없다. 1인극에서 배우는 이야기의 중심이자 무대 그 자체가 된다.

어쩌면 배우들에게는 한계를 깨는 도전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좋은 1인극을 보고 나면, 더 많은 배우들이 그 도전에 뛰어들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1인극을 사랑하는 에디터가 꼽은 환상적인 1인극 네 편을 소개한다.






1. 하나의 심장이 들려주는 16명의 이야기-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한 사람의 죽음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19세 청년 시몽의 심장이 새로운 몸에 이식되는 과정을 다룬다.

극중에서 배우는 시몽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고, 의료진이 되기도 한다. 무대 위 배우의 변신을 통해 관객이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역할의 변화가 아닌, 한 생명을 둘러싼 시선의 변화다. 생명의 가치, 선택, 존엄성과 사회 구성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촘촘한 작품이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속 손상규 배우. 국립정동극장, 2026,     ©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속 손상규 배우. 국립정동극장, 2026, ©프로젝트그룹일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연출 민새롬, 제작 프로젝트그룹 일다

2019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히 공연되다, 2026년 초에 5번째 시즌 공연을 마쳤다. 국립정동극장,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등에서 공연됐다.

손상규, 윤나무, 김신록, 김지현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2026,     ©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2026, ©프로젝트그룹일다


1인극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면, 입문작으로 추천한다. 바다를 담아낸 화려한 조명과 음향에 일단 몰입하게 되고, 배우의 화려한 언변과 연기력에 매료되어 지루함 없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시즌이 내년에 열리기를 함께 기다려 보자.





2. 드럼과 배우, 그리고 비트- 《온 더 비트》


.배우 한 명. 드럼 한 대.

《온 더 비트》는 이 단순한 구성으로 1인극의 에너지를 완전히 다르게 보여준다.


리듬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소년 아드리앙. 드럼은 아드리앙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다. 모든게 남들과 다르다고 느낄 때, 유일하게 절대적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존재.

아드리앙 역의 배우는 전설적인 팝 음악들에 맞춰 라이브 연주를 하는가 하면, 눈을 뗄 수 없는 독백을 선보이기도 한다.

음악이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가 되는, 연극과 콘서트의 경계에 선 작품이다.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대학로TOM2관, 2023,     ©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대학로TOM2관, 2023, ©프로젝트그룹일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민새롬 연출이 선보인 또 다른 1인극인 이 작품은

2022년 초연 이후 2023년 앵콜, 2025년 재연까지 이어졌다. TOM극장,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등에서 공연됐다.

윤나무, 강기둥, 강승호 등이 출연했다.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대학로TOM2관, 2023,     ©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 <온 더 비트>의 한 장면, 대학로TOM2관, 2023, ©프로젝트그룹일다

《온 더 비트》는 일반적인 독백극과 다르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이 아니라,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공연이다.

1인극은 조용하고 내밀한 장르라는 편견을 깨는 작품. 《온 더 비트》는 가장 뜨거운 방식으로, 한 사람의 세계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3. 체호프의 세계를 품은 남자 - 《Vanya》


고전은 익숙함과 싸워야 한다.

이미 수없이 해석된 작품일수록 새로운 질문을 만들기는 어렵다.


영국 National Theatre의 《Vanya》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배우 앤드류 스캇은 작품 속 모든 인물을 맡는다.


© National Theatre
© National Theatre
© National Theatre
© National Theatre


한 사람이 모든 역할을 연기한다는 설정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다.

오히려 체호프가 가진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사랑받고 싶지만 외로운 사람,

인정받고 싶지만 좌절하는 사람,

변화를 원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서로 다른 인물들이 한 배우의 몸 안에서 충돌한다.


에디터가 흥미롭게 보았던 포인트는, 성별과 나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배우의 연기였다. 여러 배우가 나누어 맡던 인물들을 한 사람이 연기하면서, 관계와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앤드류 스콧은 인물을 상투적으로 연기하지 않고, 본질에 다가간 뒤 신선한 요소를 더했다. 그의 성실한 캐릭터 연구가, 오래도록 이어져온 고전 속 인물을 실재로 존재하는 듯한 인물로 탈바꿈시킨 건 아닐까?


현재 《Vanya》는 National Theatre at Home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한글 자막은 지원하지 않는다.)




4. 안녕. 거기, 날 보고 있는 너- 《Fleabag》


관객은 보통 목격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Fleabag》에서, 관객은 이야기 안으로 들어간다.

피비 월러브리지가 직접 쓰고 연기한 《Fleabag》은 19금 블랙코미디다.

제 3의 벽을 부수는 아찔한 담화. 배우는 객석을 향해 말을 걸고, 자신만의 의견을 공유하고, 비밀을 털어놓고, 때로는 관객에게만 보이는 순간을 만든다.

관객인 내가, 인물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만 같다.



© National Theatre
© National Theatre


《Fleabag》은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그 뒤에는 외로움과 실수.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과 상실이 있다.

공감한다고 말하기에는 눈치 보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인물.

그 복잡함과 불편함이 《Fleabag》의 힘이다.

원작 《Fleabag》은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BBC에서 시리즈로 제작하여 방영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피비 월러브리지가 주인공을 맡았으며, 시즌2에는 앤드류 스콧이 출연한다.


현재 《플리백(Fleabag)》 한국 초연이 공연 중이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6월 19일부터 9월 6일간 관객을 만난다. 김규남, 김주연, 김히어라가 출연한다.

원작이 가진 날카로운 유머와 여성 서사를 어떻게 현지화했을지 궁금해진다. 에디터도 아직 관람 전이다!




혼자라서 가능한 이야기


네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1인극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는 한 배우가 여러 삶을 통과하는 과정.

《온 더 비트》에서는 몸과 음악으로 확장된 무대.

《Vanya》에서는 한 배우가 하나의 고전을 품는 방식.

《Fleabag》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벽을 넘은 솔직한 고백.


이번 글에서는 에디터가 직접 만나 인상 깊었던 네 편의 1인극을 소개했다.

한 명의 배우를 통해 만난 세계에 흠뻑 젖은 경험이, 막이 내려도 일상으로 쉽게 돌아오기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마음을 두드리는 연극을 만나고 싶다면, 요즘 올라오는 1인극들을 주목해보길.

좋아하는 1인극이 있다면, 에디터에게도 슬쩍 공유해주면 좋겠다.




Da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