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불안을 마주하는 고전
프리드리히 실러가 17세의 나이에 억압적인 군사학교에 갇혀 지내며 써 내려간 데뷔작 <도적들(Die Räuber)>은 독일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시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희곡이다.
부친 살해, 젊은 세대의 체제 전복, 급진적인 사상과 폭력을 다룬 이 텍스트는 1782년 초연 당시 관객들이 오열하고 실신할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200여 년이 흐른 지금, 보훔 극장(Schauspielhaus Bochum)에서 루치아 빌러(Lucia Bihler)의 연출로 새롭게 탄생한 <도적들(Die Räuber)>은 이 뜨거운 텍스트를 오늘날의 무대로 호출한다.
극우 세력이 체제 전복을 선동하고 가부장제가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청춘들의 이 반란을 환호해야 하는가, 아니면 두려워해야 하는가?
엇갈린 두 형제의 비극
이 작품은 무어 백작의 두 아들인 카를(Karl)과 프란츠(Franz)의 극단적인 대립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이상주의자 장남 카를은 유학 중 방탕한 생활을 반성하며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열등감에 사로잡힌 영악한 차남 프란츠는 편지를 위조하여 아버지가 카를을 의심하고 내치도록 조작한다.
나아가 프란츠는 아버지를 유폐하여 굶겨 죽이려 하고, 카를의 약혼녀인 아말리아(Amalia)마저 강제로 차지하려 하며 폭정으로 가문을 장악한다.
한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오해한 카를은 절망에 빠져 체제에 분노하는 청년들을 규합해 도적 떼(Räuber)의 우두머리가 된다.
처음에는 부패한 권력을 벌하고 약자를 돕겠다는 나름의 낭만적 명분으로 시작하지만, 그의 집단은 점차 통제 불능의 끔찍한 폭력과 살육을 저지르는 갱단으로 전락한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카를에 의해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프란츠는 두려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도적단과의 피의 맹세에 묶여 아말리아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게 된 카를은 그녀의 간청에 따라 그녀를 직접 죽인 뒤,
반란과 폭력의 덧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법의 심판을 받으러 떠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창작진의 시너지: 전위적 미장센
이번 <도적들(Die Räuber)>이 원작의 서사를 현대적이고 전위적으로 무대 위에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연출가 루치아 빌러(Lucia Bihler)를 필두로 한 창작진들의 완벽한 협업 덕분이다.
루치아 빌러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도적 떼의 낭만화'였다. 그녀는 모험주의적인 영웅담 대신,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는 권력 구조와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돋보기를 댄다.
이러한 연출적 통찰은 파울라 벨만(Paula Wellmann)이 디자인한 무대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성(castle)이나 숲의 모습을 지워버린 무대 위에는 포장된 조각상과 건축의 파편, 앙상한 비계들이 널려 있는 '공사 중(under construction)'인 세계가 창조되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현실과 동떨어진 초현실적인 '제4세계'처럼 다가오는 이 무대는, 형제들의 반란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낡은 억압을 고스란히 답습할 뿐이라는 비관적 통찰을 보여준다.
특히 중앙에 놓인 라오콘 군상의 분수는 자식들을 뱀으로부터 구하지 못하는 무력한 아버지를 상징하며 무어 가문의 붕괴를 탁월하게 시각화한다.
무엇보다 레오니 팔케(Leonie Falke)의 의상과 야코프 슈스케(Jacob Suske)의 음악은 이들의 폭력이 가진 '유해한 남성성'의 민낯을 구체적으로 꼬집는다.
낭만주의의 허울을 벗어던진 도적 떼는 1950년대 필름 느와르나 갱스터 영화를 연상시키는 슈트를 입고, 폭력적인 환상을 표출할 때는 전형적인 하얀 러닝셔츠 차림을 드러낸다.
이는 의적이라는 포장을 찢어내고 맹목적인 남성 연대와 공격성을 고발하는 시각적 장치다.
여기에 흐르는 불협화음 가득한 '둠재즈(Doomjazz)'는 이들의 폭력이 쿨하거나 세련된 것이 아니라 오직 무겁고 끔찍할 뿐임을 청각적으로 짓누른다.
형 카를과 동생 프란츠는 흑백의 체스 말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며, 특히 통제욕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프란츠의 머릿속에 히틀러가 사랑했던 바그너의 <리엔치(Rienzi)> 서곡이 광기 어린 사운드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극의 섬뜩함은 배가 된다.
신체성과 현존성: 앙상블의 힘
이러한 개념적인 무대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하는 것은 보훔 앙상블의 압도적인 기량, 특히 무대 위 공간을 장악하는 배우들의 훌륭한 신체성이다.
그중에서도 동생 '프란츠' 역을 맡은 도미니크 도스-헤이스(Dominik Dos-Reis)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그는 열등감으로 폭주하는 프란츠의 서늘한 광기를 신체를 활용해 입체적으로 빚어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에게 직접 자신의 속내와 궤변을 털어놓는 순간들이다.
자칫 무겁고 진지하게만 흘러갈 수 있는 고전 비극의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프란츠가 관객과 은밀히 소통하며 비릿한 웃음을 유발하는 찰나의 순간들은 극의 분위기를 일순간 가볍게 환기시키는 훌륭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
또한 이상주의적 영웅에서 파괴적인 갱단 우두머리로 전락하는 형 '카를' 역의 알렉산더 베르트만(Alexander Wertmann)은 끓어오르는 맹목적 분노를 폭발적인 에너지로 증명하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거대한 웨딩드레스 같은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아말리아' 역의 스테이시안 잭슨(Stacyian Jackson) 역시 묵직한 발성과 존재감으로 남성들의 폭력에 맞서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려 분투한다.
새로운 결말: 현대적 연출과 서사적 한계
루치아 빌러 연출의 가장 파격적인 각색은 단연 결말부에 있다.
18세기 원작의 결말에서는 도적단과의 피의 맹세 때문에 아말리아와 함께할 수 없게 된 카를이,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는 아말리아의 간청에 따라 그녀를 직접 찔러 죽인다.
그 후 카를은 두 사람의 존재가 도덕적 세계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현상금이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돌아가도록 스스로 법의 심판을 받으러 자수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반면, 이번 보훔 연극극장의 공연은 원작의 낭만화된 비극을 비틀어 여성 살해(Feminizid)를 단호히 거부하는 현대적인 결말로 각색되었다.
제작진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살해를 어떤 숭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극에 반영했다.
그 결과, 이번 공연에서 아말리아는 두 형제 사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수동적인 희생양으로 남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선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거대한 여성 코러스의 강력한 연대와 지지를 받으며 분노한 집단으로서 힘을 얻고 스스로를 억압하던 구조에 복수하는 주체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의 거창한 의도와 장치가 서사적으로 온전히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형 카를과 동생 프란츠가 체제 전복이든 권력 쟁취든 각자만의 뚜렷한 목표를 향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아말리아는 극 전반에 걸쳐 여전히 '오직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사랑만 하는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코러스라는 거창한 시각적·청각적 장치와 결말부의 이벤트성 복수극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서사는 결국 기다림과 갈등으로만 소모된다.
남성 중심적 텍스트의 폭력성을 진정으로 해체하고자 했다면, 아말리아에게도 맹목적 사랑 이상의 주체적 목표와 뚜렷한 행위성을 부여했어야 하지 않을까.
감각적인 무대 연출의 외피를 두르고 결말을 바꾸었음에도, 캐릭터의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점은 이 공연의 가장 짙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유의 조건과 폭력의 의미를 묻다
여성 캐릭터의 서사적 수동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도적들(Die Räuber)>은 철저히 계산된 미장센과 훌륭하게 훈련된 배우들의 신체적 연기가 맞물려 완성된 강렬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공연은 반란의 낭만을 거둬내고 폭력의 민낯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묵직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부조리한 현실에 맞선다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어떤 숭고한 목표를 내세우든, 폭력이 진정한 해결책이라 말할 수 있는가?
루치아 빌러 연출은 모험주의로 낭만화될 수 있는 폭력을 날 것 그대로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끔찍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무대 위 폭력의 시각화는 곧, 폭력은 결코 낡은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억압과 유해함을 낳을 뿐이라는 비관적 통찰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18세기 고전 텍스트인 실러의 <도적들(Die Räuber)>이 2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이 범람하는 현재의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섬뜩하고도 절실한 메시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