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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K.>: 부조리를 웃음으로 승화한 카프카의 재발견

Yeri

Yeri

2026. 06. 14 01:39Views 62

부조리한 세계를 향한 명랑한 도발, '탈무드식 팅겔탕겔'

무대 위, 누군가 속옷 차림으로 혼자 서있다.

그는 바로 요제프 K. 그 속옷 차림으로 텅 빈 무대에 홀로 서서 이유 없이 자신의 아파트에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사내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Der Prozess)』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을 1인칭으로 변주한 "누군가 나를 중상모략했음이 틀림없다"라는 독백과 함께 막을 올리는 이 연극은, 시작부터 관객의 허를 찌른다.

독일의 권위 있는 연극 축제인 루어 페스티벌(Ruhrfestspiele Recklinghausen)에 초청되어 마를 극장(Theater Marl) 무대에 오르는 베를리너 앙상블(Berliner Ensemble)의 신작 <K.>는 카프카 문학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독법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연출가 배리 코스키(Barrie Kosky), 음악 감독 아담 벤즈위(Adam Benzwi), 그리고 드라마트루그 지빌레 바슝(Sibylle Baschung) 세 사람은 카프카의 『소송』, 『단식 광대』, 『유배지에서』 등의 텍스트와 그의 일기를 한데 엮어 독창적인 음악극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탈무드식 팅겔탕겔(Ein talmudisches Tingeltangel)"이라는 기이한 부제에 압축되어 있다. 모순과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품은 카프카의 텍스트가 유대교 율법서 '탈무드'와 닮아있다면, '팅겔탕겔'은 춤과 노래, 코미디가 뒤섞인 시끌벅적한 유랑극을 뜻한다. 창작진은 현대 사회의 보편적 소외라는 틀에 갇혀 있던 카프카를 우울하고 무거운 작가로만 다루는 대신, 슬랩스틱 코미디와 보드빌 쇼라는 의도적으로 가벼운 형식과 충돌시켰다.

극적 부조리를 유대인 특유의 희극적 농담으로 풀어냄으로써, 절망 속에서도 삶의 생명력을 잃지 않으려 했던 카프카의 '유대적 경험'을 무대 위로 성공적으로 복원해 낸 것이다.

© Jörg Brüggemann
© Jörg Brüggemann

무대 위로 교차하는 카프카의 악몽과 현실

극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어떤 죄로 기소되었는지도 모른 채 권위적이고 미로 같은 사법 체계 속에서 발버둥 치는 요제프 K의 서사를 따라간다.

그러나 무대 위에는 카프카의 텍스트와 그의 실제 생애가 교차한다. 재판정의 의자는 어느새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의 벤치로 변모하고, 보이지 않는 변호사의 목소리는 마치 신의 분노처럼 히브리어로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연출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철학적 서사에 기발한 시각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예컨대 질서와 청결을 대변하는 하숙집 여주인 그루바흐 부인이 무대에 살충제를 뿌릴 때, 그녀가 등에 멘 통은 다름 아닌 『변신』의 벌레 모양을 하고 있다. 극 중후반, 요제프 K 역의 배우가 새장 같은 철창 속에 갇혀 성경을 읽듯 히브리어로 『법 앞에서』를 낭독하는 장면은 억압받는 개인의 무력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며 서늘한 공포를 자아낸다.

이처럼 기괴하고 몽환적인 이미지들의 연속 속에서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카프카의 마지막 연인 도라 디아만트의 존재는 비극적 서정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따뜻함을 부여한다.

© Jörg Brüggemann
© Jörg Brüggemann

희비극을 극대화하는 언어와 음악의 소외 효과

이 작품이 지닌 미학의 정점은 독일어, 이디시어, 히브리어라는 3개 국어의 혼용과 음악의 파격적인 콜라주에 있다.

연출가 배리 코스키는 1911년 프라하에서 동유럽 유대인 극단의 연극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카프카의 일화에 주목했다. 무대 위에서 이디시어와 보드빌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강력한 '소외 효과(Verfremdungseffekt)'로 작동한다. 음악 감독 아담 벤즈위가 이끄는 7인조 라이브 밴드는 독일 주류 문화의 상징인 바흐의 교회 음악을 경쾌한 스윙으로 편곡해 연주하며,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정수인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은 이디시어로 번역되어 도라 디아만트의 입을 통해 불린다.

심지어 유대교의 성가 '콜 니드레(Kol Nidre)'의 오래된 역사적 음원까지 삽입된다. 가장 끔찍하고 무기력한 억압의 순간에 역설적으로 외향적이고 쾌활한 이디시 노래와 춤이 터져 나올 때, 관객은 허를 찔린다.

한 현지 평론가의 말처럼 "보드빌 쇼가 시끌벅적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극의 분위기는 더욱 어둡게 느껴진다".

© Jörg Brüggemann
© Jörg Brüggemann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압도적 퍼포먼스와 앙상블

이 복잡하고 이중적인 콘셉트가 무대 위에서 강렬한 설득력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무대를 장악한 배우들의 압도적인 퍼포먼스 덕분이다.

그 중심에는 남성 캐릭터인 요제프 K, 나아가 프란츠 카프카 본인의 자아까지 넘나들며 경이로운 연기를 선보인 여성 배우 카트린 벨리슈(Kathrin Wehlisch)가 있다. 그녀는 속옷 차림으로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텅 빈 무대를 누비며 노래하고, 끊임없이 논쟁하며, 심지어 탭댄스까지 소화해 내는 육체적 열연을 펼친다.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 속에서도 찰나의 표정과 제스처로 권력의 톱니바퀴에 짓눌린 개인의 처절함을 그려내는 그녀의 연기는 찰리 채플린 특유의 템포와 멜랑콜리한 매력을 쏙 빼닮아 있다.

여기에 도라 디아만트 역을 맡아 맑은 목소리로 어두운 형이상학적 세계에 심장의 박동을 불어넣은 소프라노 알마 사데(Alma Sadé), 기괴한 카리스마로 그루바흐 부인과 간병인 레니 등 여러 역할을 오간 콘스탄체 베커(Constanze Becker) 등 앙상블의 완벽한 호흡이 극의 뼈대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 Jörg Brüggemann
© Jörg Brüggemann

"출구는 없다" –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우리

"카프카의 세계에는 구원이란 없습니다. 삶이 준비한 억압으로부터 빠져나갈 길도, 도피처도 없습니다. 출구는 없습니다(There is no escape) – 그러니 우리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배리 코스키 연출의 통찰은 무대 위 요제프 K의 이유 없는 체포와 처형으로 증명된다.

극 중 요제프 K가 마주하는 형체 없는 폭력은 단지 카프카 시대의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유도 모른 채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소외되고 짓밟히는 K의 모습은, 다시금 배제와 혐오의 논리가 자라나는 작금의 기후 속에서 현대인들에게 뼈아픈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실제로 무대 위 요제프 K는 끝없이 유쾌하게 고군분투하지만 사람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한다. 그러나 그 모습을 객석에서 지켜보는 것은 전혀 재미있거나 유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묘하게 미안해지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극을 채우는 음악들조차 너무 유쾌하고 경쾌한 멜로디뿐이었지만, 그 신나는 템포 안에서 편히 웃음을 짓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그것이 가장 비극적인 절망을 희극으로 포장하여 관객의 허를 찌르려 했던 이 작품의 치밀하게 계산된 의도였을 것이다. 더욱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언어인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마치 거대한 사법 시스템 앞에 선 K처럼 엄청나게 소외된 느낌을 경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부조리와 절망, 그리고 단절을 그려내는 무대라는 공간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펄떡이는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기이하고 모순적인 감각을 남긴다.

출구 없는 악몽 속에서도 춤을 추고 노래하던 이 지독한 '탈무드식 팅겔탕겔'은, 세상의 무시와 억압 속에서도 끝내 삶의 에너지를 뿜어내던 인간 카프카의 저항과 겹쳐지며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묵직한 여운을 선사한다.

© Jörg Brügg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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