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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슬픔과 말 못 한 사랑의 탁월한 승리

Desmond Chewyn

Desmond Chewyn

2026. 05. 25 20:28Views 5,323

젊은 사랑을 그린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아직 상실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기 전 피어나는 사랑은 수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그러나 텅 빈 무대 위에서 두 청소년 줄과 알바가 처음 만나는 순간,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매력적인 첫 만남은 상실을 둘러싼 말 없는 이해를 바탕으로 풋풋한 로맨스로 발전한다.


이번 공연은 독일계 스위스 작가 베네딕트 웰스의 호평받은 소설 《고독의 끝》(Vom Ende der Einsamkeit)을 세계 최초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연극으로 자주 각색되어 온 에두아르 루이의 소설들을 연상시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하나 야나기하라의 《작은 삶》(A Little Life)이 지닌 깊은 정서적 울림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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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상적인 각색작은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극단 중 하나이면서도 종종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보훔 샤우슈필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웰스의 네 번째 소설은 독일 베스트셀러 목록에 80주 이상 이름을 올렸으며, 2016년 유럽연합 문학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현재까지 영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은 이 소설이 유일하다.


배우이자 연출가, 앙상블 단원인 가이 클레멘스는 이토록 진정성 있는 각색을 완성해낸 것만으로도 아낌없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최근 몇 년간 본 소설 원작의 무대화 가운데, 원작의 핵심 정서를 충실히 살리면서도 섬세한 연극적 표현을 통해 한층 더 깊이를 더한 보기 드문 사례로 꼽고 싶다. 클레멘스는 기억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시적이면서도 절제된 무대를 만들어내며, 그 모든 순간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여기에 안야 라베스의 미니멀한 무대 디자인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거대한 회전무대 위 거의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공간에서 라베스는 인물들의 삶을 이루는 각각의 장면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작고 아늑한 공간들을 세심하게 만들어낸다. 전자 타자기가 놓인 책상, 턴테이블을 위한 아늑한 한구석, 사소해 보이는 기억들이 쌓여가는 주방 아일랜드, 그리고 10여 년 만에 재회한 줄과 알바의 깊은 외로움을 담아내는 홀로 선 가로등까지, 어느 하나 의도 없이 놓인 것이 없다. 이러한 시적인 무대 이미지에 요하네스 초츠의 조명이 더해져 강렬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시대별 음악은 이야기가 거의 30년에 걸쳐 흘러가는 동안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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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스는 《고독의 끝》에서 인물들의 삶을 질병과 죽음, 슬픔,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으로 그려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훔 샤우슈필하우스의 뛰어난 앙상블은 각자의 인물을 깊이 이해하고 온전히 체화함으로써 이 어두운 현실에 생생한 설득력을 더한다. 줄 역의 도미니크 도스-라이스는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고요히 멈춰 있는 순간만으로도 그 어떤 대사보다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감각이 마비된 듯한 열 살 소년에서 30대 후반의 홀아비에 이르기까지 한 인물의 변화를 그려내는 그의 연기는 놀라울 만큼 단단하며 깊은 비애를 품고 있다.


니나 슈타일스가 연기하는 알바는 도스-라이스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따뜻함과 의심할 여지 없는 진정성으로 작품 전체에 중심을 잡아준다. 한편 마티아스 막스 헤르만은 알바의 남편 로마노프라는 복잡한 인물을 능숙하게 풀어내며,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서서히 깊어지는 다층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오늘날 독일어권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배우 중 한 명인 파얌 야즈다니는 토니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사랑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는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이야기의 여러 갈래를 하나로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중심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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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바보들이나 품는 거야.” 줄의 형 마티가 비웃듯 말한다. “비관주의도 마찬가지야.” 줄이 받아친다. 《고독의 끝》이 상실이라는 고된 시간을 헤쳐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냉정하게 비춘다면, 이 공연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힘이다. 무대 곳곳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소박한 요리 장면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아름답게 드러내며, 마침내 내가 무대에서 본 가장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 중 하나로 이어진다.


다른 인물들이 자신의 삶에서 사라진 것들에 어느 정도 붙들려 있는 반면, 모두의 곁을 한결같이 조용히 지키는 토니는 작품 전체를 단단히 붙드는 중심이 된다. 그의 존재는 삶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고, 무엇보다도 찰나처럼 스쳐 가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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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사진 ©Sophia Hegawald


Vom Ende der Einsamkeit은 다음 시즌 보훔 샤우슈필하우스에서 재공연될 예정이다


Desmond Chewyn